2025 KSA 백일장 산문 부문 우수상 수상작 - <라일락>

2025 KSA 백일장 산문 부문 우수상 수상작 - <라일락>
라일락

 

프블로그

 

창작은 고통스럽다. 유명한 작곡가나 화가, 소설가를 보면 대부분 말년이 비참하다. 고흐를 보라. 유명한 예술가이지만 정신병을 알았다고 한다. 결국 자살을 시도하다 그 영향으로 죽는다. 어린 시절이 비참한 경우는 더 흔하다. 대부분 가난과 역경을 견디며 그 경험을 작품에 녹아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걸 보면 오히려 고통이라는 흙에서 창작이라는 식물이 자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창작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라면 바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다. 어떤 주제로 작품을 만들 것인가. 그 과정은 가시밭길을 걷는 듯하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쿡쿡 아리고 너무나 따갑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생각한 소재는 항상 다른 이가 먼저 꺼낸 생각이라는 점이다. 세상에 예술가는 왜 이리 많은지.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긴커녕 아주 심하게 방해하고 있다.

그래도 생각을 거듭하면, 어느 순간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떠오른다. 절대 자의로 유도할 수 없는, 우연의 산물. 그리고 그 우연은 때때로 우리의 삶에도 나타나나 보다.

 

주제 선정

 

난 화가가 천직이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누구보다 비참하고, 누구보다 고되다. 이 얼마나 비옥한 땅인가. 다른 예술가 중에서도 화가인 이유? 단순하다.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은 현실이 아니니까, 아무도 내게 상처 주지 않는다. 그림 속 인물은 언제나 그대로이고, 그 자리에 계속해서 서 있다. 내게서 절대로 멀어지지 않는다. 반면, 이 세상은 계속 변한다. 그래서 어둡고 축축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상처를 남긴다. 평생 내 편일 것 같았던 사람도 언젠가는 떠난다. 나도 이걸 알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 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누굴까. 가족? 고개를 들어 공원을 보자. 공놀이하며 즐거워하는 아빠와 아들. 딸의 그네를 밀어주는 엄마.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간지러운 웃음소리. 이런 추억은 모두에게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추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도 흐릿하다. 이제는 내가 기억하는 척하며, 스스로 없는 기억을 만들어 낸 것인지 의문이 든다. 행복한 기억 대신 내게는 우울한 기억이 하나 있다. 역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잊어버리려고, 이 기억은 실제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 시킨듯 하다.

이런 현상을 만델라 효과라고 한단다. 없던 사건을 실제로 기억하고, 실제 사건을 없던 일로 생각하는 것. 비록 만델라 효과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공통된 망각이나 착각을 의미할 때 자주 사용되지만, 내 경우에는 개인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슬픈 기억.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 그러나 매년, 이맘때가 되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기억. 그것이 나를 괴롭힌다.

10월의 어느 날, 선선한 바람이 분다. 나는 더 이상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그녀의 손을 잡고 걷는다. 길 양옆 가로수는 형형색색 낙엽을 떨어뜨린다.

길을 걸었던 이유? 목적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기억이 떠오르면 언제나 괴롭다. 머리가 아프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녀는 누굴까. 분명 나의 엄마일 것이다. 이날 이후로 나는 줄곧 혼자였다. 아무도 내 곁에 오지 않았다. 학급 친구는 1년이면 떠났고,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아. 모두는 아닌가.

"야! 너 뭐 하냐. 또 사색에 잠겨가지고는. 아주 예술가 나셨어."

그래. 나에게 있는 인연은 딱 하나. 민우.

민우를 만난 것은 한 10년 전이다. 사실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가장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 10년 전 것일 뿐이니까. 선선한 바람이 불던 그날이었던 듯하다. 그 바람은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지만, 새로운 인연을 내려주었다. 정말 우연한. 그림 주제를 떠올리는 것같이 순전히 운에 달린 그런 인연.

 

어린아이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는 혼자 외로이 서 있다. 떨어지는 낙엽을 구경하며 멍때리는 아이. 10분이 지난다. 낙엽은 40개가 떨어진다. 1시간이 지난다. 이제 세고 있던 낙엽 개수를 잊어버린다. 낙엽은 아이의 희망과 같아서 점점 더 떨어지기만 한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불안은 어둠처럼 다가온다. 아이는 불안이라는 물에 빠져 목만 수면으로 나온다. 허우적대던 아이는 결국 힘이 빠진다. 그때 아이의 손을 잡는 또 하나의 손.

나는 민우에게 손을 보여달라고 한다. "왜 또 갑자기 그러는데." 마지못해 내어주는 든든한 손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는 예쁜 손이 많다고. 예술을 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손이다. 기타리스트나 다른 연주가를 보면 하나같이 예쁜 손을 가지고 있다. 길게 뻗은 손가락과 그 끝에 있는 노력의 증표, 굳은살을 보아라. 그림을 그릴 때에도 손은 중요하다. 그림을 처음 배우면 선을 긋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선은 균일한 두께로 일정한 간격을 가져야 한다. 손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직선에 숙달하면 구불구불하게, 그다음에는 간단한 도형을 배운다. 손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예술은 한 명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작품이다. 그것이 눈에 보이면 그림, 귀로 들리면 음악.

"이제 됐냐?" 민우는 손을 확 채간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긍정한다.

 

새로운 캔버스를 꺼낸다. 이번에는 무슨 그림을 그릴까. 주제를 정하는 것은 항상 나의 발목을 잡는 과정이다. 주제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다른 일을 해본다. 밖에 나가서 걸어도 보고, 민우에게 연락도 해본다.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은 산책을 해보자. 문을 나서니 노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은행나무는 외로운 나무다. 생물 시간에 배웠던 종속과목강문계. 그리고 은행나무는 은행나무 문의 유일한 종이다. 은행나무는 친구가 없다. 분명 과거에는 은행나무와 그 친척이 있었겠지.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고고히 그 자리를 지킨 것은 우리가 보는 은행나무뿐이다. 심지어 은행나무는 암수가 나뉘어져 있는 나무이다. 암나무는 열매를 맺는데, 열매의 냄새 때문에 사람들은 수나무를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개체는 수나무다. 두 암수 나무는 서로 만나지도 못한다. 현재 은행나무의 수분을 도와줄 수 있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과학자들은 은행나무 문의 쇠퇴를 이러한 이유라고 추측한다. 인간이 없다면 은행나무는 영원히 혼자 서있다 결국 멸종할 것이다. 은행나무를 주제로 해서는 안 되겠다. 너무 어두워질 것 같다. 나는 밝은 그림이 좋다. 내 삶이 어두운데 그림까지 어둡게 하고 싶지는 않다.

계속 길을 걷는다. 건물들이 지나간다. 학원, 마트, 병원. 전부 사람이 가득한 장소다. 내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끄럽고 혼잡해 계속 있다 보면 어지러울 때도 있다. 특히 큰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은 질색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어서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는 관심이 없을 텐데 말이다. 계속 길을 걷는다. 오늘따라 평소와는 다른 길을 걷고 싶다. 똑같은 길을 걸으면 계속 같은 생각밖에 나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서 걷는다. 내가 사는 곳은 좁은 동네에 불과해서 금방 외곽에 도착한다. 평소에는 공원으로 가는 것을 선호하지만 오늘은 반대로 가자. 조금만 걸으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목적지 없이 가보는 거다.

기다리던 버스에 탔다. 창 밖의 풍경은 획획 바꾸고 버스 특유의 냄새가 난다. 쾌적하지도 꿉꿉하지도 않은 신기한 냄새다. 뒷자리에는 시끄러운 남학생 무리가 있다. 또 그들만 아는 이야기를 하며 떠든다. 소음을 없애기 위해 이어폰을 꺼낸다. 노이즈 캔슬링을 하고 음악을 들으면 저 소리를 묻히게 할 수 있다. 선곡은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잔잔한 노래가 좋겠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요루시카의 비와 카푸치노를 튼다. 기타 리프가 매력적인 노래다. 들을수록 차분해지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소설 데미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면에서 기다리는 나를 찾아갈 수 있다. 찾아간 나는 항상 외롭다.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앉아 있는 나를 희미한 빛이 비치고 있다.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무언가 몰입해 있다.

정류장을 10개 정도 지났을까. 이번 정류장에서 내리자. 다음 정류장은 초등학교이니 분명 시끄러운 학생들이 몰려올 것이다. 나는 미리 내려 주위를 둘러본다. 조용하고 한적하다. 조금 더 걷자, 카페가 하나 보인다. 아무도 없는 아주 작은 카페. 훌륭하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적막 속에 작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하고 포근한 소리가 아주 분위기 있다. 하얀 색감의 배경과 그 위에 흩뿌려진 파스텔 톤의 오브제. 마치 매력적인 그림을 보는 듯하다. 따뜻한지 시원한지 구분이 되지 않는 완벽한 온도와 습도. 한쪽 벽 책장에는 소설이 한가득, 반대편 벽에는 그림이 걸려있다. 감각적인 배치가 눈을 사로잡는다. 이곳이라면 영감이 떠오를 듯하다.

음료를 시키러 카운터로 향한다. 상냥한 종업원이 내게 말을 건다. "어떤 메뉴로 하시겠어요?" 고개를 드니 내 또래로 보이는 한 여자가 서 있다. 아무래도 알바를 하는 것이겠지. 나는 말차라떼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는다. 구석진 곳이지만 창밖이 보이는 자리가 눈에 띈다. 의자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카페의 선곡을 감상하며 음료가 나오길 기다린다. 이번 곡은 아이유의 라일락이다. 라일락. 4월에서 5월쯤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 그 향기는 달콤하여 여러 제품에서 사용한다. 보라색은 자연에서 보기 힘든 색 중 하나인 만큼 라일락을 볼 때면 묘하게 느껴지는 이질감과 위화감은 사람을 홀린다. 개인적으로 관련된 추억도 많은데 그중 봄에 라일락이 피면 민우와 함께 공원에서 놀곤 했던 것이 가장 소중하다. 이 노래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다. 아이유가 20대에 발매한 마지막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라일락의 꽃말인 젊은 날의 추억은 아이유의 20대,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이별을 상징한다. 평소에도 자주 듣던 노래다.

그 사이 음료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그 종업원이 직접 자리에 와서 음료를 건넨다. 분명 학생인 것 같은데 혼자서 일하는 것일까? 그녀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맛있게 드세요." 아까 그 상냥한 말투다. 말투는 사람의 인상을 좌우한다. 친절하고 따스함이 느껴지는 말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반응한다. 괜히 더 말을 걸게 되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즐거움이 느껴진다. 반면 차갑고 날카로운 말투에는 답하기 싫어진다. 또, 겉으로는 따뜻한데 그 내면에는 비웃음이나 우월감이 담겨있는 경우나 그 반대도 있다. 종업원의 말투는 너무나 따뜻하다. 말을 걸고 싶게 만드는 묘한 느낌이다. 나는 노래를 칭찬한다. 선곡이 너무 좋고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고. "아. 그런가요? 음악 취향이 비슷한가 봐요. 칭찬 감사합니다." 나는 직접 선곡한 것인지 물어보며 지금 혼자서 카페를 운영하는지 궁금해한다. 그녀는 선곡은 스스로 했다면서 평소 아이유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한다. "카페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건데 잠시 도와주는 거예요." 이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생각이 하나 스친다.

 

그 낙엽 길을 걸으며 그녀와 나는 공방으로 향한다. 아주 작고 아기자기한 공방으로 자주 놀러 가곤 했던 곳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 공방은 그녀가 일하는 곳이다. 그녀는 비누를 만들거나 방향제를 포장하며 날을 보낸다. 학교가 끝나면 종종 그녀는 나를 공방에 데리고 가 구경을 시켜준다. 그곳에서는 좋은 항상 좋은 냄새가 난다. 마치 달콤한 꽃향기다.

정신을 차린다. 나도 모르는 새 종업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맥락을 곰곰이 더듬어 보곤 라일락에 관한 대화였음을 깨닫는다. 그래. 이번 그림의 주제는 라일락이 좋겠다. 예쁜 라일락과 그 배경으로 빨간 지붕의 집을 그리자. 라일락은 세세하게 묘사하고, 뒤에 있는 집은 흐릿하게 하여 원근감을 주는 것이다. 마치 카메라의 초점을 라일락에 잡아 찍은 사진처럼 말이다.

"저는 항상 라일락을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비누도 라일락 향만 썼던 것 같아요. 아마 부모님의 영향이겠죠." 달콤씁쓸한 말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 나간다. 왜인지 모르게 대화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꼬여있던 마음이 살짝 풀리는 기분이다. 달달한 것을 마셔서 그런가. 어딘가 익숙하고 묘하게 호감이 가는 카페다.

 

밑 그림 그리기

 

1시간 정도 카페에서 머물렀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주제를 정했으면 이제부터는 일사천리다. 구도까지 잡았으니 어려운 것은 없다. 우선 이번 그림의 주인공인 라일락을 스케치한다. 푸르른 잎과 보랏빛 어여쁜 라일락을 상상하며 가장 크게 그린다. 그 뒤로는 마치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을 듯한 주택을 하나 그린다. 밑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선을 세게 긋지 않는다. 나중에 그 자국이 남아 채색이 잘되지 않거나 완성한 후에도 눈에 거슬릴 수 있다. 아주 살살, 연한 연필을 이용해 그려야 한다. 두 번째 주의 사항은 선을 한 번에 긋는 것이다. 여러 번에 걸쳐서 그리는 것을 일명 털선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초보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이다. 털선을 사용하면 그림을 지역적으로 보게 되며 전체적인 그림의 밸런스를 파괴한다. 따라서 그리고 다시 지우더라도 한 번에 선을 그어야 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 만날 때는 살살, 연하게 대해야 한다. 바로 세게 나가면 마무리가 좋지 않다. 또,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의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민우가 내게 와서는 그림에 대해 물어본다. "이번 그림은 뭐야? 꽃인가?" 긍정하며 설명해 준다. 카페에 관한 이야기, 라일락에 관해 종업원과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준다. 그러고는 카페에서 포장해 온 음료 한 잔을 건넨다. 민우를 위해서 주문해 온 레모네이드이다. 민우는 음료를 받고는 한 입 마신다. "너가 웬일로…. 아니다." 무언가 숨기는 듯한 표정이다. 물어본다. "그냥. 너가 웬만하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질 않는데 오늘따라 그 종업원 얘기만 하길래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약간 고양되며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하긴 인연이라고는 민우뿐이었던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이다솜.

스케치를 마저 마무리한다. 2시간이 지나자 그림의 형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더 예쁜 그림이 나올 것 같아 기대된다. 그러나 기분이 마냥 좋지가 않다. 무언가 엉켜있는 듯한 느낌이 머리가 복잡하다. 너무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은 것 때문인 것 같다. 이만 잠에 든다.

 

학교가 끝난다. 기분 좋게 교문을 나서니 그녀가 서 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단풍나무 사이를 걸어간다. 옆 차도에는 버스가 달린다. 조금 더 걸으니 구석진 건물이 나온다. 그 건물 안에서 한 여자아이가 나온다.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내 손을 잡고 있던 그녀는 나를 여자아이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여보낸다. 달달한 향이 내 코끝을 스친다.

순간 나는 잠에서 깬다. 분명 기분 좋은 꿈이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또 그날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그 여자 아이, 너무나 익숙하다.

창밖이 시끄러워진다. 시계를 보니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고등학생 이어야 하지만 자퇴하여 지금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비록 중졸로 내 학력은 끝날 것이지만, 예술가의 길은 대부분 험난하다는 핑계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죄책감을 견딘다. 그래도 아침이 여유로워지면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은 그 남는 시간에 어제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리려고 한다. 어제 큰 그림은 다 그렸으니 세밀한 디테일을 표현할 차례다. 잎 하나하나, 꽃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그린다. 밑그림이 잘 그려져야 선이 예쁘게 따지고, 결과적으로 더 좋은 그림이 나온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을 하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그림은 마치 사람과 같다고. 정성 담아 공들이면 더 좋은 그림이 된다. 내가 의도한 바가 더 잘 드러나고, 그냥 보기에도 더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더 정성을 들이고자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카페로 향한다. 기분 좋은 냄새와 분위기는 그대로이다. 다만 아직 그 종업원은 학교에 있겠지. 그래도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혼자인 내가 어떻게 이런 여유 있는 삶은 사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선 민우의 도움이 크다. 그에게 업혀 살면서 많은 배려를 받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 그림이 돈이 된다는 것이다. 그림이라는 하나의 작품에 가치가 매겨지고, 이가 물질화되는 것은 싫어하지만 별 수 있나. 일단 먹고 살아야지. 그림은 작은 의뢰, 일명 커미션이 들어오기도 하고, 혼자 그린 그림이 어느 날 팔리기도 한다. 어느 편이든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이번 그림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그림만큼은 돈으로 환산하고 싶지 않다.

한참이 지나고 다솜이 들어온다. 내가 있는 것을 보고는 약간 놀란 눈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얼굴이 붉어질 이유가 있나.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이 근처에 사는 것 같다. 아마도 저 대로변 건너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 같다. 나는 가져온 그림을 보여준다. 아직 밑그림도 채 완성이 되지 않았지만, 보여주고 싶었다. 라일락을 보며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을 바랐다. "우와. 이걸 그린다고요?" 다솜은 자기도 미술을 배운 적이 있다며 감탄한다. "구도와 투시가 정말 절묘하네요."

오늘은 유자차를 시킨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로 나온다. "빵은 서비스예요." 굳이 필요 없긴 하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받는다. 한 입 먹어보니 아주 맛있다. 어제 내가 말차를 마신 것을 기억하고는 녹차 크림이 들어간 빵을 준 것 같다. 음료와 빵을 먹으며 생각에 잠긴다. 사실 이미 주제를 정했기 때문에 생각에 잠길 이유는 없다. 지금부터는 그저 반복적인 노동일 뿐이다. 그러나 무언가가 나를 잡고 이곳으로 다시 이끌었다. 내 가슴 속의 불가항력이었다. 설명하기는 힘든,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생각에 잠긴 나를 깨워주는 노래가 들려온다. 마샬 스피커에서 라일락이 울린다. "어제 이 노래 좋아하셨죠?" 오늘 그림까지 가져왔으니 내가 라일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는 없었겠지. "그거 알아요? 라일락의 꽃말이 되게 예쁘다는 거. 여러 개 있었는데, 지금은 한 세 가지가 떠오르네요." 나도 알고 있다. 앞서 아이유의 노래를 소개하며 말했던 젊은 날의 추억. 내가 답하자 그녀는 이어서 말한다. "두 번째는 우정이래요. 특히 붉은 색 라일락이 그런 상징을 가진다고 하네요." 그럼 세 번째는 무엇인지 물어본다. "그건 말하지 않을래요. 그저 지금 그리시고 있는 보라색 라일락이 상징하는 것이라고만 알려줄게요."

말하다가 자르다니, 대화가 찜찜하게 끝난다. 마치 작곡할 때 마디가 계이름 시로 끝나는 기분이다. 보통 우리가 가자 안정감을 느끼는 음은 도이다. 대부분의 스케일이 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을 보아라. 이 때문에 마디나 곡을 도로 끝내면 무언가 마무리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당장 여러 가지 동요나 대중음악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떳다떳다 비행기도 도로 끝난다. 시는 도 바로 아래 있는 음이다. 가장 안정적인 음에서 아주 조금 틀어진 음. 긴장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들으면 시를 사용하는 음악은 안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의 특징은 다른 곳에서 돋보인다. 시로 마디를 끝내면 불편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이곳에서 곡을 끝내지는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을 준다. 다시 말해서 곡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해준다. 대부분의 경우 다음 마디에서 시를 도로 받으면서 부드럽게 전환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 대화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음 마디에서 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밑색 칠하기

 

어제는 집에 돌아와 스케치를 마무리했다. 이제는 밑 색을 칠할 차례다. 바로 본 채색으로 들어가면 색감도 잘 안 나올 뿐 아니라 어렵다. 따라서 배경이 될 색상을 고르고 밑 색을 칠하여 큰 형태를 먼저 잡는다. 이번 그림은 푸르른 라일락잎이 주가 될 것이다. 밑 색도 푸른 계열을 사용한다. 물감은 집에 아주 많다. 그저 원하는 색을 고르고 조합해서 칠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에서 작업하지 않을 예정이다.

"옛날에 여기는 공방이었데요. 저도 어릴 때는 와서 비누도 만들고 했는데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네요. 괜찮다면 여기에서 작업해도 돼요." 다솜의 카페에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업실이 있다고 한다. 비록 과거 공방에서 다루던 주제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차이가 크지만, 기본적인 재료는 비슷하다. 무엇보다 그 분위기의 카페에서 작업한다는 사실이 기쁘다. 아침부터 물감과 붓을 한가득 챙기기 시작한다. 민우는 다가와 묻는다. "이게 다 무슨 난리냐."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민우는 약간 놀란 표정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버스 시간에 쫓겨 바빴기에 그대로 넘어간다.

카페에 도착하자 작업실의 문이 열려있다. 다솜이 미리 열어 두고 학교를 간 모양이다. 일찍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물을 받고 물감을 팔레트에 짠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계속 물감을 섞는다. 다행히도 나는 색감이 좋은 편이다.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바로 칠을 시작한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작업이 슬슬 마무리되기 시작한다. 문을 열고 다솜이 들어온다. 오자마자 나의 그림을 보고 감탄한다. "그새 엄청 작업했네요." 내가 칠해둔 그림을 보고서는 감탄한다. 색감과 조화를 특히 좋아해 준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이런 하루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 원래였다면 사흘도 걸리지 않을 작업이다. 희한하게 카페에서 작업하려니 속도가 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홀리거나 정신이 팔렸는지 그림에 도저히 집중되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이렇게 작업이 늘어지는 게 마냥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계속 이러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좋다. 이 분위기, 장소와 사람이 모두 마음에 든다. 마치 학업에 지쳐 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방학을 누리는 듯하다. 영원히 이런 여유로운 생활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방학을 즐기는, 그런 상태이다. 개학이 오지 않기를 빌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 일주일 즈음 지났을까. 주말이 오고 오늘도 어김없이 카페로 갈 준비를 마친다. 평소였으면 등교했을 민우와 마주친다. "야. 주말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려고?" 내가 물감을 한참 챙기는 것은 보았지만, 학교에 출석하는 동안 나는 카페에 출석했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매일 카페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그럴 때마다 다솜은 내 뒤에서 그림을 봐주었다고. 민우는 충격을 받은 듯하다. "이 바보야. 그걸 모르냐. 눈치를 어디에 팔아먹었냐고!" 왜 화를 내는 걸까.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거지. 하나도 모르겠다. 민우를 뒤로 하고 카페로 간다.

카페로 가는 버스에 탄다. 오늘은 앞자리에 시끄러운 아이들이 탄다. 이번에는 노래 대신 소설책을 읽으려고 챙겼다. 소설은 아몬드이다. 주인공 선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우정과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이다. 옛날에 읽었던 책이지만 계속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감정이 부족하다는 점이나 부모님을 일찍 잃은 점을 볼 때면 항상 거울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윤재에 직접 이입이 되면서 더 실감 나게 책을 읽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재보다는 감정이 있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공감 능력. 어릴 때부터 눈치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 학교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했을 수도 있다. 이 감정이라는 개념이 인간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타인에게 쏟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투자하면서 예술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옆자리에 어머니와 딸이 앉는다. 소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연상이 되는 것이 있다. 어머니와 딸이 등장하는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 아이의 시점에서 작성된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책이다. 아이가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때로는 그 심리를 전부 담지 못할 때가 많다. 가장 유명한 예시가 바로 얼굴이 발개지는 것이다. 어머니는 사랑하기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지만, 그것을 보는 아이는 화가 났다고 생각한다. 아직 순순하고 눈치도 없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겨둔다. 이제 버스가 거의 도착했다. 그러나 민우의 외침이 아직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나? 눈치가 없다면 과연 무엇을 모르고 지나간 걸까.

버스에서 내리고 카페로 들어간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솜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깨닫는다. 내가 놓친 게 무엇인지.

 

채색

 

그랬다. 다솜이 나에게 호감이 있었구나. 이것을 알고 나니 그녀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 음료를 건네는 손길, 그림을 바라보는 눈빛. 아니, 어쩌면 그녀는 애초에 그림에 눈길을 준 것이 아니라 내게 눈길을 준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나 그림은 그 작가의 의도와 마음을 표현한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녀는 그림을 통해 나와 가까워지려던 것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나는 왜 이것을 몰랐을까. 그녀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을 잊어버리다니.

조용히 눈을 감고 나의 내면으로 간다. 앞서 말했던, 데미안에 나오는 그 장면처럼. 이번에는 내면의 내게 귀를 기울인다.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평소 어두웠던 것과 달리, 나의 내면은 은은한 빛이 감싼다. 아주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작은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점점 선명해진다. 두근. 두근. 나의 심장이 강하게 요동친다. 떨리는 것일까. 아니면 설레는 것일까. 오늘 나의 내면은 사랑을 속삭인다.

마음을 부여잡고 작업실로 향한다. 물에 비친 나의 얼굴은 토마토라고 불러도 믿을 정도다. 그녀가 내 뒤로 지나가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번 차례는 채색이다. 밑 색을 다 칠하였으니, 명암이나 그림자, 다양한 디테일과 묘사를 한다. 이때 미리 깔아둔 밑 색이 큰 도움이 된다. 빠르게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림에 집중하려고 하여도 내 귀에는 너무도 큰 심장 소리가 들린다. 다솜이 주변에 있을 때면 그것이 더 심해진다. 그러나 작품을 처음 그리던 의도를 생각하면서 몰두하려 노력한다. 작품은 라일락에서 영감받았다. 정확히는 이 카페에서 말이다. 처음부터 이 그림은 돈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 카페에 걸어두고 싶었다. 아니면 다솜의 마음속에 걸어두고 싶다.

다솜이 내게 말을 건넨다. "오늘따라 표정이 굳어있네요?" 얼굴은 더욱 빨개진다. 내가 빨개지자, 그녀의 얼굴도 공명해서 붉어진다. 순간 서로의 눈이 마주친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마저 그림을 그린다.

 

돌아오는 버스 안, 생각에 잠긴다. 아마도 일주일이면 그림은 완성된다. 만약 그림을 다 그리면 무슨 핑계로 카페를 갈 수 있을까. 뭐, 꼭 카페에 가는 데에 이유가 있어야 하나.

 

계속해서 그림에 집중하여 노력한 지 5일, 그림은 거의 완성되었다. 이제 몇몇 효과만 추가하면 끝이 난다. 다솜도 그것을 눈치챈 듯하다. 그림을 어디에 둘 것인지 묻는다. 일단 완성하고 나서 그 뒤에 생각하려 했다고 둘러댄다. 그림으로 다시 눈을 돌린다. 반사광을 추가해서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일반적으로 물체는 빛의 반대 방향이 가장 어둡다. 그림자가 생기니 당연하다. 그러나 빛이 바닥에서 반사되고, 이 반사광에 의해 오히려 은은하게 밝아지는 부분이 있다. 이를 표현하면 더욱 퀄리티 높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1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작품이 완성된다. 다솜이 다시 묻는다. 나는 이 카페에 걸어두면 좋겠다고 속마음을 말한다. 다솜의 얼굴이 또 한 번 붉어진다. 둘이서 같이 카페를 둘러본다. 그림을 걸기에 완벽한 장소를 찾는다. 카페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작업실과 이어지는 공간이 있다. 책상과 그 위의 필기구. 그리고 작은 액자가 하나 있다. 이 방이 적당해 보인다. 책상을 잠시 옆으로 치우기 위해서 그 위의 짐을 내려놓는다. 내 손은 액자로 향한다. 액자에는 3명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어린 다솜. 다른 한 명은 나였다. 어릴 적의 나. 지금은 보지 못할 환하게 웃는 내 얼굴이 사진에 있다. 다솜에게 가서 액자에 대해 물어본다. 여기에 왜 너와 나의 얼굴이 있는지.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누구인지. 다솜은 친절하게 답해준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의 손을 잡고 공방으로 향한다. 소꿉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나는 신이 나서 답한다. 긴 단풍나무 사이를 지난다. 길옆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왁자지껄 떠드는 고학년 형, 누나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내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 있다. 개인 작품을 전시하는 소규모 전시회가 열려 있다. 길을 가던 행인들은 자유롭게 작품을 구경한다. 나도 모르게 미술품을 보며 배시시 웃는다. 한참을 그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번에는 다음 그림, 그다음에는 뒤에 있는 그림. 곳곳의 작품이 나를 홀린다. 그때,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후로 혼자 서있길 몇 시간. 그림은 하나둘씩 정리된다. 이때 나를 도와준 것이 민우다.

"그리고 그 소꿉친구가 아마도 저일 거예요." 다솜과 이야기를 마치자 스스로 잊어버렸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갑자기 볼이 따뜻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나 보다. 멍하니 서있는다. 그때 다솜이 휴지를 들고 오며 내 볼을 닦아준다. 그녀의 체온이 느껴지고, 내 볼은 붉어진다. 볼이 더 따뜻해지는 것 같다.

마저 그림을 건다. 그림 덕분에 공간이 화사해진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그림으로 향하지 않는다. 내가 묻는다.

"우리 왜 서로 존댓말 쓰는 거죠? 말 놓으면 안 되나요?" 그러나 그녀가 내 말을 끊는다. "좋아."

 

에필로그

 

엄마는 나를 잃어버린 후 그 죄책감에 공방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건물은 다솜이네 가족에게 넘겼다. 다솜을 통해서 다시 만난 엄마의 얼굴은 파묻혀 있던 내 기억을 폭발시킨다. 다시 한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오늘은 민우와 함께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서 다솜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카페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공연을 보러 간다. 미세스 그린애플이라는 밴드이다. 우리 셋은 즐겁게 공연을 본다. 비록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의 북적거림이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좋다. 이번 노래는 라일락. 기타 리프가 아무 매력적이다. 갑자기 민우가 나와 다솜을 번갈아 본다. 그러고는 화장실을 간다면서 자리를 비켜준다. 내게 윙크를 날리며 웃는다. 이제는 나도 눈치가 생겨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나는 다솜에게 묻는다. 라일락의 마지막 꽃말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냐고.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보라색 라일락의 의미는 첫사랑, 그리고 사랑의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