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 Book Review - 10. 프로젝트 헤일메리
인류는 우리 외의 존재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인류는 역사적으로 미지의 우주에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외로움을 달래왔다. 우주에 존재하는 지적 생명체가 과연 인간뿐인지는 몇세기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많은 SF 작가들의 상상력의 빝반이 되었다. 90년대에는 외계인 영화의 대표격과 같은 인디펜던스 데이, 2000년대에서는 디스트릭트 9, 그리고 2010년대에는 컨택트 등 인류는 정말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외계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상상을 퍼부었다. 이러한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인류의 침략자이든, 인류의 구원자이든, 외부 지성체는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올해 공개된 동명의 영화의 기반이 된 소설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러한 전통적인 세계관에 새로운 버전을 제시한다.
이 소설에서의 외계인은 극적인 판타지를 깨뜨리고, 현실적이면서도 앤디 위어의 소설답게 공학적인 만남을 주선한다. 아스트로파지라는 생물 공통의 적 앞에서, 주인공 그레이스는 외계 지성체 로키를 마주한다. 이때, 잠시 물러나서, 인간은 다른 외계 지성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일단 소설은 그렇다고 주장한다. 로키와 그레이스는 철저히 이성적인 만남과 대화를 통하여 서로의 지능과 언어를 판단해 나가고, 그레이스의 공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번역기를 완성함에 따라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교환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전제가 필요하다. 두 대변인측이 모두 초기의 공포를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절제력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야하고, 그 호기심을 적절한 대화의 수단으로 바꿀 공학적/과학적 기반 등 말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만난 인간 사회는 이러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수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 원인은 앞서 말한 초기 공포가 해소되지 못해서가 그럴 것이다. 그것은 미지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가 길에서 다른 언어를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때 우선 곤란해하고 경계하는 것 처럼, 인류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무기인 소통이 봉인당하면 두려움을 느낀다. 하물며 생물학적 기원조차 완전히 다른 존재와의 만남은 생존을 건 도박과 같다. 영화나 소설이 외계인을 침략자로 묘사하는 것은, 인류 스스로가 역사 속에서 자신과 다른 문명을 마주했을 때 저질렀던 폭력과 정복의 역사를 어느정도 투사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먼저 짓밟겠다는 방어기제,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거울을 보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러한 불통의 장벽을 “과학”이라는 범우주적인 언어로 낙관적이게 설명하려 시도한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연합하여 아스트로파지에 대한 공동전선을 구축하게 되고, 이는 곧 성공적인 아스트로파지의 퇴치로 이어진다. 인류의 첨단과학기술과 외계족의 제노나이트를 이용한 건축 기술의 융합을 통하여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이러한 아름다운 낙관론에 의문을 제시한다. 소설 속 두 종족 간의 연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본질적으로 그들이 ‘모항성의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공통의 난제를 마주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의 만남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지만, 이것이 가치관과 집단 이기주의가 충돌하는 문명 대 문명의 거대한 조우로 확장될 떄도 과연 이 공식이 성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길에서 만난 타인을 경계하듯, 인류 전체가 직면할 대중의 심리는 훨씬 더 방어적이고 감정적일 것이다. 미지의 존재를 마주했을 때 집단이 느끼는 공포는 단순히 집에서 미지의 벌레를 마주한 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충격과 공포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한 외계인을 만날 진정한 준비는 과학 기술의 고도화나 막연한 우주적 우애를 다지는 것이 아닌, 우리 내면에 도사린 타종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끊임없는 훈련이다. 이것이 적절히 갖춰져야지만, 인류는 미래의 예상치 못한 만남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고, 만남이 성사될 경우 범우주적인 종족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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