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당불내증의 역사

유당불내증의 역사
Photo by Anita Jankovic / Unsplash

유당불내증. 말 그대로 유당을 소화할 수 없는 상태이다. 필자도 유당불내증이 있어 일반적인 우유 대신 유당이 없는 락토프리 우유를 마신다. 락토프리 우유를 마시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유당불내증은 왜 생길까?

원래는 누구나 유당불내증이었다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유당을 분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애초에 우유를 만드는 포유류는 극히 어릴 때 빼고는 우유를 접할 기회도 별로 없고, 우유를 마실 이유도 없다. 그래서 유당 분해 효소인 락테이스는 유아기에만 필요하고 크면서 락테이스 발현 기능은 퇴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즉, 당시에는 유당불내증이 정상이고 오히려 유당을 분해할 수 있는 개체들이 돌연변이였다.

유당불내증은 아시아인의 약 90%가 있는 반면에, 유럽 계통의 민족은 10-20% 정도로 매우 낮다. 이는 그들의 생활 양식에 이유가 있다.

유럽에 유당불내증이 적은 이유

유럽은 지역 특성상 일조량이 적고 비교적 추운 지역에 속한다. 이런 기후에 사는 인간은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타민 D가 부족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뼈에서 대사가 활발하게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뼈가 약해진다. 이런 이유로 초기 유럽인들은 뼈가 약했다. 시간이 흐르며 유럽인들은 우유를 마시면 뼈가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우유에 다량 함유된 칼슘이 뼈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수산화인회석(\(\ce{Ca5(PO4)3OH}\))에 사용되며 뼈의 강도를 높여준다. 또한, 유럽의 추운 기후에서는 농사를 짓기가 힘들어 곡물의 생산이 불안정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은 곡물이 아닌 다른 영양 공급원이 필요했고 이때 우유를 안정적인 영양 공급원으로 취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추운 기후 (출처: Pixabay)

이후부터 유럽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많이 마시기 시작했고 약 8000년 전부터 목축을 시작했다. 앞에서도 언급되어 있듯, 일반적인 인간은 성인이 되며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급격히 퇴화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부분이 유당불내증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80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럽 지역의 인류는 진화를 거듭하며 돌연변이가 살아남는, 일종의 자연 선택이 발생한 것이다. 이 덕분에 유럽인, 미국 백인 등 유럽 계통의 민족은 유당불내증 비율이 10-20%에 불과하는 현저히 낮은 수준을 보인다.

유럽 중에서도 남유럽에 비해 북유럽의 유당불내증 비율이 더 낮다. 그 이유는 남유럽은 적절한 햇빛이 도달하기 때문에 농사도 어느 정도는 되고 비타민 D의 합성도 나름 잘 일어나는 반면, 북유럽은 농사가 거의 안되기 때문에 우유에 더 많이 의존하였다.

아시아에 유당불내증이 많은 이유

유럽과 반대로 아시아인은 약 90%가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아시아에서 낙농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온대 기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낙농 문화 대신 일찍부터 농사를 짓는 경작 문화가 발달해있었다. 경작 문화 덕분에 곡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 굳이 다른 영양 공급원을 찾을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낙농 동물의 우유를 마실 이유가 없었다. 또한, 아시아는 지역 특성상 충분한 햇빛을 받았기에 유럽에서는 흔했던 비타민 D의 결핍으로 인한 구루병, 골연화증, 골다공증이 적었다. 그렇기에 추가적인 칼슘 보충을 하기 위해 우유를 마실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시아인이 유제품을 전혀 소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신, 식용으로 만들어 먹을 때는 무조건 발효 과정을 거친 식품인 아이락, 요거트, 치즈 등의 형태로 만들어 먹었다. 우유를 발효하면 우유에 포함되어 있고 유당불내증의 원인이 되는 유당이 젖산균 등의 미생물에 의해 포도당과 갈락토스로 분해되고 젖산으로 변한다.

\[\ce{C12H22O11 + H2O ->[\text{β-galactosidase}] C6H12O6(glucose) + C6H12O6(galactose)}\]

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진화

성인이 되어서도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돌연변이는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도 유당 분해가 가능하도록 진화한 케이스가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은 대부분의 토지가 사막으로 이루어져있다. 당연히 건조한 사막에서는 농사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가축을 데리고 여기저기 이동하여 살아가는 유목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주로 이때 쓰인 가축은 소, 양, 염소, 낙타 등이 있다. 주로 동아프리카에서는 소 중심의 낙농 문화가 발달하였다. 낙농 생활을 하며 가축들에게서 우유, 피, 고기를 얻어서 먹는 삼중 식문화가 많이 쓰였다.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에서는 낙타 중심의 낙농 문화가 발달하였다. 특히 낙타의 젖은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에 중동 지역 아랍인과 북아프리카인은 낙타 우유를 많이 소비하였다. 이들 역시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우유를 많이 마시며 돌연변이가 정상이 되도록 진화하였다. 이 외에도 사하라 사막 남쪽의 사헬 지역에서도 유당불내증이 적다.

아프리카의 낙타를 이용한 유목 생활 (출처: Pixabay)

지금까지 유당불내증의 진화, 조금 더 정확히는 반대로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의 진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돌연변이 유전자가 어떻게 유당의 소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일까? 유당을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돌연변이 유전자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언젠가 다루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