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선행(善行)을 통해 스스로의 도덕적 만족감을 충족하고자 한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서 오는 행복은 사회의 힘든 이들을 돕는, ‘후원’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오선영의 소설 『후원 명세서』는 ‘후원’이라는 행위 속 숨겨진 사람들의 복잡한 심리를 다룬다. 소설은 오랜 기간 아동을 후원해 온 한 인물이 인터넷에 올린 글로 시작된다. 후원자는 재단 직원을 통해 후원 아동이 생일 선물로 비싼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당혹감을 느낀다. 기대와는 다른 후원 아동의 솔직한 욕구 표출에 후원자는 일종의 분노와 배신감마저 느낀 채 온라인에 글을 작성한다. 글을 읽은 사람들은 후원 아동을 비난하기도 하고, 후원 아동의 요구를 여과 없이 그대로 전한 재단을 비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소설 속 상황은 책을 읽는 이에게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타인을 돕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타인을 위한 봉사는 순수한 나눔이었을까, 아니면 ‘감사’와 ‘올바른 성장’이라는 정서적 보상을 담보로 한 도덕적 투자였을까. 이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후원 아동의 모습과는 다른 한 고등학생의 행동을 통해 후원이라는 행위에 대한 두 시각과 심리의 충돌을 다룬다.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은 방송작가의 요구로 주인공 윤미가 빈곤을 연기하는 장면이었다. 《데미안》을 좋아하는 어린 중학생 소녀 윤미는 대신 《키다리 아저씨》가 좋다고 대답해야 했다. 입고 있는 교복 치마는 닳아 문드러진 모습으로 카메라에 담겨야 했다. 적어도 방송에서는 말이다. 이는 비단 윤미의 일만은 아니었다. 책과 현실에서 윤미와 같이 방송에서 사람들에게 비치는 후원 아동은 대부분 순수하고, 맑은 눈을 가졌으며, 작은 것에도 감지덕지하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실제 의사와는 별개로 후원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인물의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이른바 ‘빈곤 포르노’라고도 불리는 이 현실은 어째서 소설과 우리 삶 속에 등장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사람들이 후원받는 이에게 후원 아동'다운’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은 후원 아동에게 마치 윤미의 모습처럼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알고, 바르고 올바른 모습으로 성장하여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를 기대한다. 나 역시 어느 정도 마찬가지였다. 책의 초반부를 읽으며 지금까지 장기간 후원해 온 사람이라면 후원 아동의 갑작스러운 값비싼 선물 요구에 실망할 수도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아이는 본인이 받고 싶은 선물을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후원자, 더 나아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었을 뿐인 사람들은 왜 분노와 당혹감을 느꼈을까? 나는 왜 후원자가 당연히 실망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느꼈을까? 질문에 대한 답변은 책 속 윤미의 과거 회상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엄마는 윤미에게 말했다. ‘어떤 욕망도 드러내선 안 돼.’ 어린 윤미에게 그 말은 신앙이 되었다. 윤미는 어떤 것도 사달라고, 필요하다고 떼쓰지 않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어른들은 그런 윤미가 없는 집 아이 같지 않다며 칭찬했다.”(후원 명세서, p.68).
사람들은 엄마가 윤미에게 요구한 것처럼 욕망을 드러내는 대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 줄 아는 착한 아이의 모습을 ‘기대’했다. 그러나 원하는 선물을 묻는 질문에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빨간 나이키 운동화를 말한 고등학생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앞서 언급한 소설 속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내가 생각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부분은 재단 측에서 후원 아동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본인의 일 처리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생겼음을 사과하는 후원 재단의 직원에게 남학생은 그 일을 신경 쓰지 말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쭉 빼서 빨간색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알바 더 했어요. 원래는 할머니 휠체어 수리하려고 모으는 중이었는데, 아저씨 글에 개빡치기도 하고, 키보드 워리어들 땜에 짱나서 그냥 제 돈으로 시원하게 질렀습니다.!”(후원 명세서, p.83).
학생의 발언은 나에게 묘한 통쾌함과 동시에 윤미가 느낀 것과 같은 부끄러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욕망마저 억누른 채 살아야 할 의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학생은 후원의 '대상'이기 이전에 자아를 가진 한 명의 고유한 인격체이다. 운동화는 그가 사회의 부당한 비난에 저항 할 줄 알며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 숨 쉬는 10대 소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또한 학생의 발언을 통해 후원 아동'다움’이라는 프레임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과연 '도움받는 자'는 '도와주는 자'에게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서 '도움받는 자'를 비난할 수 있을까? 만약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그들에게 무엇을 도와주고 있는 것인가? 대답이 선행되지 않고는 논의를 이어갈 수 없는 질문들임에도, 진지하게 고려된 적 없이 고정관념에 기반해 프레임은 정당화됐다. 사실, 후원자가 후원 아동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을지언정 그 무엇도 후원 아동에게 후원 아동'다움’을 강요할 근거는 없었다.
『후원 명세서』의 등장인물 속 직접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누구도 없다. 후원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동의 올바른 성장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이를 보상받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는 이유로 후원자에게 잘못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후원 재단의 직원도 마찬가지이다. 후원 아동의 부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는 사실로 비난받아서는 안 될 것이며, 후원 아동 역시 본인이 받고 싶은 선물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은 후원을 대하는 두 가지 시선, 즉 후원자의 태도와 고등학생의 태도를 통해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과연 후원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기 위해 후원자는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할까? 후원을 받기 위해 사람들의 연민을 자아내려 연기했던 윤미와 달리, 고등학생은 빨간 운동화를 갖고 싶다는 본인의 욕구를 숨기지 않았다. 나는 소설 속 윤미와 고등학생의 태도를 통해 후원자가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은 후에도 여전히 목적성을 가지고 후원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본인의 정서적 보상을 위한 도덕적 투자가 후원의 목적일지라도, 분명 그 후원 또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후원자가 지녀야 할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면, 자신의 도덕적 행동에 대한 ‘보상 심리’보다는 후원이라는 ‘행위’ 자체로부터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후원받는 이에게 ‘올바르게 성장할 것’을 요구하는 대신, 그가 진정한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후원이라는 행위에 진정한 의미가 부여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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