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후기

<참교육>을 시청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후기

요즘 들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이 통쾌한 액션, 사이다적인 스토리로 호평받고 있다.

<참교육>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시리즈로, 대한민국의 무너지는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교권보호국'이 만들어진 판타지적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 '나화진' 및 여러 교권국 소속의 등장인물들은 교내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 범죄, 교권 침해 등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교육'한다.

우리나라는 촉법소년이라는 제도를 통해 일정 연령 이하의 청소년에게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적용하고 있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은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고, 소년법상 보호처분의 대상이 된다. 이는 아직 판단 능력이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성인과 동일한 형사책임을 묻지 않고 교화와 보호를 통해 다시 사회로 돌아올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이다. 소년법 또한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통해 건전한 성장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해당 제도는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보호와 교화라는 법의 취지는 좋지만,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갈취하고, 타인의 삶을 무너뜨린 가해자가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범죄가 대중들의 눈에 보일 때마다 '피해자의 고통은 누가 책임지는가?' 같은 비난의 여론을 항상 엿볼 수 있다. 제도가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그 청소년이 누군가에게는 명백한 가해자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드라마, 참교육은 이런 갈등을 교육부 산하의 가상기관인 ‘교권보호국’을 만들어 ‘즉각적인 개입’과 ‘강력한 응징’이라는 방식으로 해소한다.

작품 속 학교들에서는 약한 학생은 괴롭힘을 당하고, 교사는 학생을 통제하지 못하며, 학부모와 제도는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교육적 훈계나 절차적 대응은 무력하게 느껴진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나화진과 교권보호국이다. 이들은 기존 제도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입하여 가해자가 지어야 할 책임을 돌려준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참교육>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단순히 폭력 장면 때문이 아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끼던 정의가 작품 속에서만큼은 빠르게 실현된다는 데서 온다.

현실의 학교폭력 사건은 해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다시 상처받기 쉽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처벌이 강하지 않아 처벌이 내려져도 피해자가 입은 상처가 회복되기 어렵다. 반면 <참교육>은 이러한 현실의 한계을 생략한다. 피해자는 선명하게 드러나고, 가해자는 분명한 악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악을 교권국은 망설임 없이 응징한다. 독자는 그 과정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특히 <참교육>은 청소년을 언제나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만 보지 않는다. 일반적인 제도는 청소년을 미성숙하고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일부 청소년은 자신이 미성년자임을 이용해 타인을 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책임이 지워져서는 안 되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미래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불만을 통쾌하게 해소한다.

하지만 <참교육>의 방식이 현실의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작품은 어디까지나 판타지다. 교권국이라는 기관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가해자를 물리적, 폭력으로 제압하거나 강압적으로 응징하는 방식 역시 실제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럼에도 <참교육>이 대중에게 강한 호평과 반응을 얻은 이유는 분명하다. 이 작품은 사람들이 현재 제도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정확히 건드리고 있다. 법은 공정해야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때때로 지나치게 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학교는 학생을 보호하면서도 '교육'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학부모의 민원, 절차적 한계, 권한 부족으로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빈번하다. 그런 현실의 상황과 다르게 <참교육>의 교권국은 '누군가는 피해자 편에 서서 확실하게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여 철저하게 이를 응징한다.

<참교육>은 촉법소년과 청소년 범죄 문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교권국이라는 판타지적 장치를 통해 해소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법과 제도의 절차가 필요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즉각적인 정의가 실현된다. 이는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안겨주고, 동시에 현실의 미흡함을 되뇌인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함이 분명하나 청소년이 누군가의 삶을 파괴했을 때, 그 책임은 어디까지 어떻게 물어야 하는가?

<참교육>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만, 이가 현실에서 적용될만큼 현실적이지는 않다. 대신 시청자들이 속으로 원하던 분노와 불만을 직관적으로 풀어낸다. 그 점에서 <참교육>은 단순한 학원 액션 사이다물이 아닌 우리 사회의 청소년 범죄와 교권 문제를 지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