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으로 보는 현대 대중 문화 겉핥기.

Humanities Aug 13, 2025

글 소개

해당 글은 작가가 <모순>을 읽으며 갑자기 든 생각을 조금 발전시켜 급하게 써 놓은 글이다. 그러니 책의 내용과는 사실상 무관하니 생소한 도서라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빠른 시일 내에 책에 관한 내용의 리뷰를 본 글에 추가하거나 Part를 나누어 업로드 할 것이다. 말한 듯 급하게 적어 놓은 글이라 작가 개인적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는 없지만 로지케이에 없는 새로운 분위기의 글이 될 것이라 생각해 개시해본다.


양귀자의 장편, <모순>은 불우한 편의 가정에서 자란 여자, 안진진이 어느 날 결혼을 결심한 후 그녀의 남동생, 부유한 이모, 결혼 상대 후보인 두 남자 사이에서 겪는 사건들을 담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그녀가 겪은 성찰과 다양한 자신만의 지혜들을 등장시켜 작가의 풍부한 철학을 접할 수 있다. 주로 외국 소설의 번역본을 읽은 나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편이었던 한국 소설 중에서 문체의 색감 상으로 토속성이 비교적 강하지 않아 편하게 읽히는 책이었다. 책 속에서 이따금씩 자주 등장하는 특징적 서술로 <모순>은 책의 안진진의 성찰과 인생 철학이 직설적으로 쓰여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해당 부분들이 소설이 구성하는 이야기의 흐름 상에서 잘 맞아 떨어지는 수준을 넘어서 다소 과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강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에서 해당 서술 방식을 택하는 것은 책이 담으려는 철학적 물음이 이야기에 희석되지 않도록 방지함과 동시에 이야기의 연속적이고 부드러운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또한 질문하는 문단과 그렇지 않은 것이 또렷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다른 소설보다 감정과 생각의 서술이 많이 포함된 이야기 전달부와 그러한 것보다 한 층 더 깊은 철학을 말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문체가 이야기를 잘 품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또 책이 담아내는 철학의 전달은 한 두 분단을 읽고 멈춰 고찰하는 독자가 아닌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며 받아드리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탑승하는 독자를 조금이라도 더 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혹은 내가 이야기와 그 곳에서 오는 인물의 사고를 따라가 못하는 것일 수도, 특이한 친구를 둔 탓에 화자의 사유를 표현하는 문장 그 자체에 믿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간단한 느낀점은 여기서 마치고 본격적인 이야기로서 독서 중 느낀 현대 사회와 미디어의 인간에 대한 표현법과 그 특징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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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에 등장하는 안진진의 두 결혼 상대인 김장우와 나영규는 일차적인 성격 상의 대비를 보여준다. 장우는 야생화 사진 작가로서 많은 일을 즉흥적으로 처리하는 반면 영규는 그녀와의 데이트 코스 등 수많은 절차를 분 단위 계획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규의 경우 이러한 성격이 주인공이 ‘인생 계획표’를 언급하며 진지하게 다루기까지 한다. 글에서는 이 인물들이 대표하는 성격과 상징이 아닌 이들을 본 나의 생각에 대하여 논하려 한다. 이들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MBTI 심리 검사 유형의 지표 중 하나인 P와 J의 대조였다. MBTI는 대한민국에서 몇 년간 큰 유행을 하며 한 지표에서의 두 유형의 대비를 과장하여 유쾌하게 표현하는 것이 하나의 대중문화의 흐름이 되었다. 지금은 전체적인 관심도가 떨어진 상태라 해도 대표적으로 F와 T, J와 P 유형을 그 자체로 일종의 밈으로 사용하는 기조는 여전하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으로 큰 관심이 쏠리자 언제나 그렇듯 유행에 과하게 열광하는 일부는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쉽게 말해 ‘내가, 혹은 너가 F라서/T라서/J라서/P라서 …’ 식의 논리로 다른 사람 간의 건설적 대화를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논점을 흐리는 식의 화법을 비꼬기 위해 MBTI의 밈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주된 논점은 인간의 다양한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정확히 분리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극단적으로 한 지표의 2가지 유형을 통한 논의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므로 과하게 의존하기 위험하다는 것이다. 나도 총 인간의 수만큼 성격의 유형이 존재해야 한다 믿으며 이러한 관점에 탑승해 <모순>이 말하는 제목과 같은 수많은 인생의 모순 앞에서, 아무리 타당해 보여도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이 인생임을 논하는 책 앞에서 MBTI를 떠올리는 것은 적절치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책에서 MBTI를 제일 먼저 상기할 만큼 그 개념은 우리의 머리 속에 강하게 박혀 있다. 잠깐 떠오른 것이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하냐 생각할 수 있지만 책을 읽어가며 느낀 바로는 그러한 성격을 유형적으로 해석하는 배경에서 작가가 의도한 수많은 변칙과 모순들이 이로 인해 잘 전달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미묘한 표현의 차이를 중시하는 현대 문학의 흐름에서 굳이 MBTI와 같이 극단적인 이분법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편견을 강하게 안고 간다는 것은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의 태동으로 극단적인 속도로 진화하고 주도권을 얻은 새로운 미디어의 대중문화는 점점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사유 방식을 조용히 바꾸어 왔다. 이른바 숏 폼 콘텐츠로 대표되는 근 몇 년 간의 추이는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자극을 이끌어내는 목적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성공의 지표가 되어 모두가 단일 유행에 광적으로 매달리면서 수많은 유행이 몇 주 만에 탄생하고 사그라지는 양식의 순환이 이어졌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 MBTI와 같은 몇 년을 넘어 생존하는 유행은 그 영향력과 소셜 미디어의 고유한 특징인 강한 힘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조금씩이나마 바꾸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MBTI에서도 드러나는 현대 대중문화의 유행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로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획일성과 단순함이 있다. 앞서 말한 듯 많은 사람의 관심을 빠르게 이끌어내야 하므로 최대한 단순하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으로 콘텐츠를 구성한다. 더 나아가 단순함과 유사하게 위험 부담 없이 쉽게 성공할 수 있도록 이미 유행하는 소재를 가져다 사용해 모든 콘텐츠가 전부 유사해 보이게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개성을 통해 작품의 메리트를 확보한 이전의 모든 다를 예술 매체에 반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이는 영화 산업의 침체의 원인으로 제시된 코로나 사태 때의 주춤거림 말고도 또 다른 주요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빠르게 특징을 형성한 대중 문화는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기에 최적화되어 소위 말하는 ‘대중영화’의 장점을 무력화시켰다. 또 단순하고 일차적인 깊이에서 머물며 깊은 고찰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 기조 형성에 큰 기여를 해 말하자면 ‘예술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떨어트렸다. 이러한 쇠퇴의 흐름은 오직 영화 산업 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말했듯 <모순>을 읽으며 MBTI가 떠오르는 것처럼 획일성을 거부하는 성격의 현대 문학 등 여러 예술 매체가 소비자들의 성격과 멀어지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기반의 사회가 주류가 되며 모든 예술이 결국 대중을 대상으로 한 상품의 성격을 가지게 된 배경에 겹쳐 고려해볼 만한 문제가 되었다.  

인류는 이전까지 인터넷과 같이 전세계로의 빠른 정보 전달을 가능케한 기술을 접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빠른 변화와 관심 중심이라는 근본적인 특징으로 기존의 예술들과 반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한 매체를 받아드리는 무의식적인 태도로서의 성격의 변화를 겪고 이는 기존 문화를 주춤하게 했다. 이러한 변화를 그저 예술의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으로 보고 잘 수용해야 할지, 혹은 특색 없는 재생산만을 반복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보고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지는 누군가가 답을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는 너무나도 빠르게 일어나는 전대미문의 대격변을 앞두고 아무 대처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아닌 예술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어떠한 방식으로 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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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unseok

영화, 수학, 조금 문학? ★☆(3/10)이 평작. KSA25 수학 장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