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들

소설들

취미이기도 하고, 연습이기도 하다.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의 짧은 이야기들.

1

내가 기차에 탔을 때 나의 모든 물건과 짐을 집에 있었고, 나는 창밖에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깥 공간은 어두운 남색으로 빼곡히 채워졌고 하늘 위에선 두터운 구름이 뒷배경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기차 안보다도 어두운 바깥이었다. 얇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 몇 개는 창문에 바로 붙어서 기차 복도의 조명 빛을 받았다. 그 바로 뒤에 보이는 같은 나무의 나뭇잎 무리보다도 선명하게 빛을 내는 그 조그마한 초록색 타원체들은, 눈이 부시기라도 한 듯이 제 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빗소리를 배경음으로 해, 그 흔들림이 창문 유리와 마찰하는 소리가 포근하게 울렸다.

나는 창가 쪽 의자에 앉았다. 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릴 필요도 없으니, 바로 자리에 앉은 뒤 외투만 벗으면 됐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내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무릎 위에 말아두었던 외투를 들어 옆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몸이 한 층 더 가벼워졌고, 나는 숨을 내쉬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했다.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빗속을 질주하면서 그녀의 몸으로부터 멀어져가고,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녀의 앞으로의 행복을 빼앗을 대상을 막아주지 못해 미안했다. 전부 내가 과거에 그녀와 약속했던 것들이다. 그것들을 약속할 때는 모두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런 순수하고 순수했던 믿음들까지도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지금 나는 현재에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인가가 나를 미래로 이끈다. 오직 그녀만이 과거에 남겨져 있다.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서, 과거의 그 시점에 정지해 있다. 나는 그녀가 담겨있던 몸으로부터 멀어져가면서, 그녀가 존재했던 시점으로부터 멀어져간다.

그녀는 건물 계단을 오르다 실족한 뒤로 의식을 잃었다. 그녀의 목뼈는 잘 이어진 채로 보호 장비에 감싸져서, 병원 침대 특유의 평평하고 부실한 배게 위에 놓여있다. 흰 바탕에 수놓아진 얇은 푸른색 줄무늬 자수는 그녀가 누워있는 부분 주위에서 휘어졌다. 병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아득하고 먹먹해서, 마치 그 공간이 헤엄쳐나가야 하는 유체로 채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점성이 물보다는 약하고, 공기보다는 강한 미지의 물질을 사이에 둔 채로 나는 그녀를 계속해서 내려보았다. 그녀의 눈은 봄날의 부드러운 풀 밭 위에서 잠 든 시골 소녀의 눈처럼, 지그시 감겨있다. 눈을 뜨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을 마주하기가 두려워서도,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나 따분해서도 아니다. 단지 그런 느낌에 대한 의식 활동을 처리하지 못할 뿐이다. 그때 그 공간 속에서 눈을 뜬 채로, 의식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뿐이다. 그것은 아무도 없는 빈방에 홀로 서서, 어쩐지 식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차가운 가구들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침대, 창틀, 시계와 함께 그녀가 놓여있는 것이다. 빈집에선 아무리 많은 가구들과 함께하더라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오는 걸 막을 수 없다.

 

나는 내 휴대폰을 켜고 가장 먼저 나오는 배경 화면을 보았다. 나는 그 사진을 대학에 갓 입학한 봄에 찍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론 벚꽃 나무 하나가 두 건물 사이에 우뚝 자라 있었다. 여기저기 뻗어나간 나뭇가지 끝자락에는 하얗고 연분홍스러운 벚꽃잎이 몽글몽글 피어있다. 창틀은 햇빛을 받아 밝고 눈부신 옅은 갈색으로 빛났다. 나는 큰 갈색 책상 앞에 앉아 건너편 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너편 의자가 햇빛에 비친 둥그런 그림자가 책상 위로 길게 드리웠다. 벚꽃 그림자는 누군가가 쏟아버린 음식물의 자국처럼 책상 위에 흩뿌려졌다. 나는 내 아래 책상과 창밖의 벚꽃 나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넋을 놓았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사진을 찍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창문에 묻어있는 빗방울이 구름 틈새로 흘러 들어온 햇빛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그 벚꽃의 그림자를 기억했다. 바깥이 기차 안보다도 밝았다. 그러나 기차는 빛내림을 빠르게 벗어났고, 그림자는 사라졌다. 깊고 어두운 남색이 다시 눈앞에 드리웠다. 그래서 나는 창문에서 눈을 때고 흰 형광등 빛만이 보이는 기차 복도 가운데로 시선을 돌렸다.

병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는 그녀 옆을 지키면서 그 사진 속 장소로 그녀와 함께 찾아가고 싶었다. 그녀를 소복이 덮은 얇은 파란 줄무늬 이불 위로 창밖의 나뭇잎의 흔들리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둥그런 그림자 조각들이 서로 섞이면서 이뤄내는 무질서는 서로 다른 순간의 ‘나’들을 하나로 이어준 듯하다. 대학교 1학년 그곳에서도, 그녀와 함께한 병실에서도, 지금 이 기차 안에서도 내 머리 위에서 공간을 비추는 건 하얀 형광등이었다. 수줍게 떨리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셋 중에 오직 지금, 그 그림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오직 지금, 나는 그녀와 함께하지 않았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뒤로 그녀와 그녀의 친구가 걸어갔다.

“야, 야 저기 봐봐. 너무 예뻐.”

“어 진짜로, 예쁘다. 그런데 어떡해. 시험기간이야.”

“아, 진짜로 너무 예쁜데 시험기간이야. 너무 예뻐, 어떡해.”하고 그녀는 내 바로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2

눈앞은 어두웠고 차가운 공기가 순간적으로 내려앉은 느낌이 등 뒤에서부터 전해졌다. 타원형 전등이 원판 밑에서 내뿜는 가로등 특유의 창백한 빛이 공간을 채웠다. 모든 것이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만, 새삼스럽게도 나는 지금 그것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하고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노란색 스웨터에 내려앉은 가로등 빛 그림자가 크게 변했다. 아래로 죽 뻗은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들과 뒤섞이며 알 수 없는 상호작용의 규칙을 확립해 갔다.

“나는 그때 진지했다니까. 그런데 내 언니는 하나도 안 그래. 언제나 그랬지. 웃기지 않아?”

“그런데 너 기분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지. 나였어도 네가 갑자기 그러면 못 참겠다. 일반적으로 웃기지 않은 상황이 아니야.”

“아, 진짜 내가 너한테 무슨 말 들으려고 이 얘기를 꺼낸 거냐. 됐다, 됐어. 너는 남자라는 게, 아휴. 너 알아서 해라. 그렇게 평생 잘살아라, 그냥.” 그녀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아, 내 언니는. 진짜로.”

“그런데.”하고 나는 숨을 들이쉰 다음에 다시 내쉬었다. “좋은 거 같아. 너는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고. 나는 지금 부모님 이야기는 생각하기도 힘든데.”

“아니 그거는 좀 다르지. 니 부모님은 이혼한 거고, 내 언니는 그건 거잖아.”

“그니까. 어쨌든. 너는 무슨 일 있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고. 봐봐,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있는 것도 얼마나 좋은 일이냐?”

“나라고 해서 뭐 아무 생각 안 하고 사는 줄 알아? 진짜로. 나도, 어쩌면 그냥 타협하는 거 같은 거야. 나한테 벌어지는 일들이랑, 나랑. 이 둘 사이에서 이거는 안 되겠다, 이 정도는 뭐 괜찮다. 이러면서. 나라고 모든 걸 다 가져가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니 언니 너 엄청 자랑스러워했던 거 알아? 아마 지금의 너를 봐도 그럴걸. 내가 이 말을 해서 조금 쑥스러워할 수는 있으시겠지만.”

“그게 무슨.” 하고 그녀는 화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걸 봐. 이게 뭐야.” “그래. 언니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는 건 알겠어. 그건 말이 되지. 근데 지금 이걸 봐봐. 내 재능도 제대로 활용도 못 하고. 이렇게 이상하게 살고 있고. 언니가 지금 내 모습을 본다고 하면, 아마도 뭐하고 있는 거냐고 짜증부터 낼 거야. 평소에 맨날 하던 그거 있잖아. 안 진지한 척하면서. ‘야, 너 이게 뭐냐.’ 하면서 입을 때겠지.”

“과연.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너는?”

“그렇겠지. 언니는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될 거라고 기대했어. 내 재능은 특별하고 내 흥미 분야도 특별하니까. 어딘가 한 구석으로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 거라고, 인생에서. 이렇게 믿고 있었겠지. 이런 말들은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해줬는데.” 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의 그림자가 스웨터 위로 드리우고 바람에 맞춰 찬찬히 흔들렸다. “이상해. 내가 이런 거 모를 줄 아나 봐. 내가 아직 초등학교 갓 졸업한 그런 버릇없는 애기로 보이나 봐. 고작 몇 살 차이 난다고.”

“그래서, 언니가 그렇게나 기대를 해줬는데 왜?”

“그런데 이걸 봐봐. 난 언니가 죽으면서 모든 걸 내려놓았어. 내 공부도, 나중에 계획도, 내 원래 생활도. 다 사라져 버렸어. 그래서 내가 지금, 아직 가지고 있는 것 중에는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어. 지금 이렇게 한탄하는 내 마음 말고는, 아마도.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특별한 걸 가지고 있었다가 잃었기 때문에 그런 것뿐인데. 이런 것도 특별함 축에 끼워 주는 거야? 최악인데.” “그래서 내 언니는 나에 대해서 기대하거나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정확히 말하면 사라져 버린 거지. 이런 걸 알고 죽은 거기는 할까?”

“음” 하면서 나는 궁금해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알고 있었겠지.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좋아해 줄 정도였으니까. 근데 그렇게 잘 알고 있었으면,” 하고 그녀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알고 있었으면, 무슨 유서 같은 거라도 남겨주지. 무슨 생각을 했다느니,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느니, 이런 거 조금이라도. 내가 잔뜩 인생을 망쳐갈 걸 알면서도,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몰랐던 거야? 내 특별함을 지켜줄 수는 없었던 거겠지?”

“그런데 말이야.” 하고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이때 내 그림자가 변하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특별하지 않아도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게 존재하지 않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건 없어.”

“아니야. 특별하지 않아도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건 존재해.”

 

“정말? 특별하지 않아도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게 존재해? 정말이야, 누나?”하고 나는 나에게 물었다.

“특별하지 않아도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건 존재해.”하고 나는 내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