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2009 : [업]

★★★★ 8/10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업>(2009)은 <월-E>(2008), <토이 스토리 3>(2010)와 함께 픽사의 최전성기를 이끈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소중한 이와의 이별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큰 여정과 변화를 그린 작품이라는, 어느 정도는 흔한 시놉시스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구성하고 전개해 나가는 솜씨는 전혀 예사롭지 않다.
자연 경관의 표현과 주제곡 ‘Married Life’의 분위기에 알맞은 변주가 어우러진 시청각적 연출은 <업>을 섬세하고 놀라운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특히 영화의 주요 배경인 파라다이스 폭포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과 오프닝 시퀀스, 엔딩으로 이어지는 후반부에서의 빛을 활용한 감각적이고 잔잔한 연출은 가히 압도적이다.
영화 초반 약 5분간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주인공 칼과 그의 부인 엘리의 결혼 생활을 화면과 음악만으로 별도의 대사 없이 보여준다. 직장을 얻고, 불임 판정을 받고, 행복하게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한 여인의 희로애락을 처음 등장하는 배경 음악 ‘Married Life’의 다양한 감각적인 변주와 조화를 이루며 둘의 사랑을 완전히 전달한다.

이들을 둘러싼 풍경은 매우 단순하고 일차적인 캐릭터 디자인과 대비되며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효과를 얻었다. 부드러운 인물들의 표정과 여러 감각적인 빛깔, 마법처럼 다가오는 진한 감정은 해당 오프닝 시퀀스를 '픽사 최고의 5분'으로 만들었다.
이후 영화 전반에 걸쳐 시각적으로 사각형 등 각진 형태와 원형이 각각 칼과 엘리를 상징하게 된다. 일차적으로 캐릭터 디자인에서부터 칼과 엘리는 각각 확연한 사각형과 원형을 띄고있다. 또 오프닝이 끝난 뒤 혼자 남은 칼의 집을 비추는 장면에서 이들 각각의 가구들을 통해 드러난다.

단적인 디자인 이외에도 이러한 상징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딱딱하고 수동적인 칼의 성격을 반영한 듯 움직이지 않는 집 자체는 전체적으로 각진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 쾌활하고 능동적인 엘리와 같이 그 집을 하늘로 띄워주는 풍선은 원형을 띠고 있다.
결국 이를 확장하면 ‘칼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원형으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불임 부부였던 칼에게 자식처럼 다가온 또 다른 주인공 러셀이 원형으로 디자인된 것은이러한 상징 논리에 따른 시각적 요소이다. 단순히 어린이를 모티브로 한 일차원적인 표현이 아닌 것이다.

(스포)
더 구체적으로, 집 외형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형인 말려 있는 물 호스는 결국 러셀과 그의 도요새를 살리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칼이 엘리를 투영하듯 소중히 여겼던 집은 앞선 설명과 같이 각진 형태를 띤다. 이는 후반부, 집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집착이었음을 깨닫고 이를 구름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복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칼은 영화의 후반부, 파라다이스 폭포에 도착한 후 다시 혼자 남은 집에서 엘리의 모험 책을 채운 것이 자신과의 일상적인 결혼 생활임을 발견한다. 이를 통한 칼의 깨달음으로 영화는 꿈의 달성이 궁극적인 목표나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 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위한 여정임을 역설한다. 그들의 집이 폭포 위에 놓이는 일은 인생이라는 모험을 한 엘리에게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서사적인 구성력과 함께 새로운 빛깔과 감각적으로 변주된 'Married Life' 를 비롯해 수려한 연출로 다시 한번 큰 감동을 이끌어낸 또 다른 명장면의 탄생이다.

‘집착’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중후반부까지의 칼과 최종 빌런 찰스 먼츠는 과거에 이루지 못한, 혹은 이뤄주지 못한 꿈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찰스는 선망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탐험가로 모두의 꿈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도요새의 화석이 거짓이라는 논란이 생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라다이스 폭포에서 개들과 함께 수십년을 보낸다.
찰스는 그의 도요새를 생포하겠다는 꿈이 시간이 지나며 집착으로 변하며, 이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죽이는 등 잘못된 방법을 동원하며 기쁨과 여유를 잃어간다. 그의 꿈이 품고 있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었다. 인생이 더이상 꿈이라 부를 수 없는 기괴한 목적에 끌려다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흔치 않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집착을 놓아주고 러셀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칼의 모습, 그리고 푸근한 분홍빛 햇살 속에서 파라다이스 폭포 위에 안착한 그의 집을 비추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