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단평

영화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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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

1. 극장판 짱구는 못 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
2. 천공의 성 라퓨타
3.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
4. 마보로시

한 영화에 대한 긴 글만 쓰려니 부담감에 이어나가기도 어려워 시작한 활동.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가능성이 높다.
몇몇 영화는 확장되어 별도의 글로 작성될 수 있다.

[극장판 짱구는 못 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 (2008)

★★★☆ : 7/10

인생이란 자전거를 타고, 향수의 냄새에

中 히로시의 회상

[어른 제국의 역습]은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 입장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깊은 주제 의식과 서정적인 연출력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놀라울 만큼 뭉클한 감동을 전달한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신형만의 과거 회상 장면일 것이다. 회상 전후를 포함한 해당 신 전체가 아름다운 추억 본연의 모습과 그 이면에 도사리는 현재의 책임 회피라는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품고 있다. 이를 카메라 구성과 앵글에 녹여 내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자신감과 솜씨는 다른 실사 명작 영화들 못지않다.

장면은 짱구가 EXPO70이라 적혀있는 철문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영화의 시작부터 대전 엑스포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가 어른들을 홀리려는 세트라는 사실은 이미 작중 해당 장면 이전에 대사를 통해 밝혀진다. 그 상황에서 작은 철문 안에서 관리되는 엑스포가 어른들의 추억이자, 동시에 빌런의 가장 유용한 도구로서 비춰진다.

본격적으로 짱구가 엑스포장으로 들어오자 그 안에는 어린 시절 모습을 한 형만이 있다. 3시간을 기다리고도 월석을 보고 싶다는 형만의 영락없는 어린 모습이 우리들의 마음을 녹인다. 짱구가 어린 형만에게 다가가자 형만의 부모가 미소와 함께 서서히 물러나는 모습은 직전까지의 어린 형만의 세계와, 짱구가 원래 살아가는 세계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을 처음으로 허무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형만의 부모로 비춰지는 사람이 배우같은 현실의 존재가 아니며, 이어서 그 세계 전체가 누군가의 정신 속 상상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세계 속 존재는 주인의 아들을 감지하자마자 주인에게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 말하듯이 미소를 짓고 조용히 자리를 비워준다. 영화의 공기를 추상적으로 전환하는 데에 있어 얼마나 아름답고 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는지 보이는가.

짱구와의 실랑이 끝에 발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하는 형만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번뜩 깨어나지 않고 천천히 잠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회상을 마치고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도 오열할 뿐 어떤 환상에서 깨어나는 듯한 모습은 일절 담지 않는다. 현재의 방식으로 인물의 표정과 행동을 배치한 것은 ‘추억’ 그 자체의 근본적인 특성을 담아내기 위한 정교하고도 직관적인 탁월한 연출이다. 아무리 갑작스러운 계기가 있어도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긴 이야기를 이루는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번뜩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꿈에 천천히 빠져들 때처럼 그 빛깔, 그 공기, 그 소리... 하나하나가 천천히 서로를 감싸며 머릿속에 만들어진다. 그렇게 형성된 푸근한 하나의 기억은, 공들인 시간에 비례해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따뜻함을 부풀려간다.

회상 자체에 대해서는 음악, 화면 구성, 색채감, 배치까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느낌만 든다. 화면은 한 남자아이가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을 하나 보여줄 뿐인데, 그 일반적이고 모두가 기대하는 삶이 얼마나 어렵게 성취한 것인지,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느낄 수 있다. [업]의 ‘픽사 최고의 5분’이라 불리는 오프닝 시퀀스가 생각나게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 처음에 자신의 아버지와 타던 자전거를 마지막에 다시 한번 타고,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어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압권이다. 이 수미상관은 ‘가족’이라는 선순환이 창출하는 가장 현실적인 미학을 너무나도 애틋하게 우려낸다.

해당 회상 시퀀스는 작중 빌런에 저항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신발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다. 영화에서 빌런은 21세기에 지쳐 모든 것이 평화로웠던 과거에 머무르고, 그 체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생각한다. 이에 대해 신형만의 발냄새는 21세기의 아버지로 살아감에 있어 짊어지는 의무와 노고를, 동시에 자녀들과 동심을 찾아 놀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자 연결다리를 상징한다. 신형만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어려움을, 또 이를 통해 지켜내는 거대한 행복을, 한 손에 쥐고 세상을 멈춰버리려는 세력에 저항한다.

그 여운은, 신형만이 어른의 모습으로 울면서 깨어나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형만이 누워있던 장소는 대전 엑스포장이 미니어처의 형태로 구현된 세트장이다. 과거에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장소가 현재의 가족 앞에서 그 근본이 얼마나 초라할 수 있는지 조용히 보여준다. 풀백(Pull-back)되는 앵글에 담긴 엑스포장의 건물 하나가 짱구의 키보다도 작다. 쪼그라든 미니어처 세트장을 비정하게 비추며, 발냄새에서 세월의 흐름의 진정한 가치를 느낀 신형만을 통해 카메라는 관객에게 묻고 있다. 가족들을 앞에 두고도 그대의 노고가 아직 보답받지 못했다 말할 것이냐고.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 : 8/10

순진한 색깔속, 눈앞에서 가로지르는 싱싱한 환상 세계의 구름위 항해사들. 미학부터 철학까지, 에니메이션의 가장 세심하면서도 거대한 성과!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이후 1986년, 미야자키 하야오는 두 번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인 [천공의 성 라퓨타]를 발표한다. 영화 평론가 박평식이 최고점인 9/10을 부여했다는 사실로 해당 영화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관람해보니 86년 작이라고는 상상 못 할 높은 서사적, 기술적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활공 장면들을 포함해 스크린에 담긴 신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개성적인 에너지와 싱싱함을 품고 있다. 오프닝에서부터 엔딩까지, 장면장면 알맞은 음악을 삽입해 몰입감을 더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효과를 확실히 누렸다. 서사 구조의 풍부함과 다채로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를 넘나드는 철학적인 주제 의식은 이 모든 장점을 하나로 끌어모은다. 보다보면 어느세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도라 해적단에 쫓겨 결국 비행선 밖으로 추락하는 시타가 구름에 가려지며 등장하는 고전적인 풍의 프롤로그 시퀀스(Prologue Sequence)가 인상적이다. 해당 시퀀스의 특징적인 그림체를 통해 먼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영화의 세계관 내에서 ‘비행’이라는 소재가 차지하는 위치를 체감시킨다. 산업 혁명 초기를 떠올리는 스팀펑크 기술과 이에 비교해 훨씬 진보한 비행 기술을 교차로 그려내면서 말이다. 이와 결합해 웅장한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습은 현재 보여주는 이야기가 여전히 먼 과거의 것임을 상기시킨다. 이후 시타가 맨 목걸이의 비행석이 빛을 발하자 이 푸른 섬광은 어두운 파란색의 배경과 명도의 대비를 일으키며 단숨에 눈을 사로잡는다. 관객들은 낙하를 느리게 만든 비행석과 바로 직전에 본 프롤로그를 연관키며 그 영롱한 빛이 어떤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하게 된다.

이후 파즈의 집에서 깨어난 시타가 그로부터 라퓨타에 대해 설명을 듣는 장면은 시청각을 이용해 감정과 이야기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완벽하고도 탁월한 애니메이션 최고의 성과이다. 우선 이전보다 피치가 높은 음악을 사용해 마치 초자연적 존재를 스쳐 지나갔을 때의 비현실적이고, 신선한 꿈을 꾸었을 때의 낭만적인, 그 느낌을 극대화한다.

활공하는 비행선

먹구름을 뚫어낸 파즈의 아버지가 발견한 것은 무수한 구름의 줄기가 사방에서 뻗은 채 빠르게 움직이는 장관이었다. 위 그림에서 보이듯 구름 한 덩어리에 많아야 한두 가지의 색을 사용해 단순함에도 아주 아름답다. 폭풍우를 마침내 이겨낸 자에게 ‘활공’이 건네는 아름다운 선물이자 위로이고 동시에 공포를 담아낸 경고 같기도 하다. 여전히 빠른 바람과 지상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은, 다시 한번 우리 뇌리속에 핵심 소재인 ‘활공’을 각인시켜 넣는다. 그 바람들의 흐름 속에서 포착해 낸 라퓨타의 마법과도 같은 실루엣까지, 정말로 예술적인 신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살펴볼 장면은 로봇 병정의 폭주로 군 요새가 쑥대밭이 되고, 파즈가 혼란을 틈타 도라 해적단과 협력해 시타를 구출하는 장면이다. 로봇 병정은 단순한 디자인에도 원리를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으로 ‘고대 문명’이라는 중심 소재를 정확히 전달한다. 주공격 무기가 고전적인 화기가 아닌 고출력 레이저의 일종으로 묘사되는 부분도 흥미롭다. 현재 인간의 것과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도 아무리 멀리 떨어진 표적이라도 순식간에 불태워버리는 모습으로 폭력의 즉각성과 불가역성을 나타내는 듯하다. 주위 요새를 보이는 대로 날려버리는 로봇 병정을 행해 그만하라 애원하는 시타의 모습이 마치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이 더 큰 파괴가 아니라 말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어지는 파즈의 비행과 구출 장면은 2D 애니메이션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시각적으로는 솟구치는 물줄기와 불꽃, 불길 속의 로봇 병정과 흰옷을 입은 시타, 공기 중을 ‘활공’하는 파즈와 도라 할머니까지, 화면을 메우는 그들만의 구조와 균형감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라퓨타에 도착하기까지 러닝타임 약 20분간 도라 해적단에 합류한 시타/파즈와 무스카를 필두로 하는 군부대 간의 레이스를 전부 공중에서 보여준다. 이때 비행선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마치 잠수정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묘사되어 ‘구름 위 항해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시타와 파즈가 도착한 라퓨타의 중심에는 정원과 거대한 나무가 있었고 로봇 병정들이 인간이 떠나간 후 수백 년 동안 이를 가꾸고 있었다. 이 둘을 정원까지 안내해준 로봇 병정은 시타에게 꽃을 한 송이 건넨다. 일전 군 요새에선 무차별적으로 파괴를 저지르던 존재가 정원에서 소녀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는 장면은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우선 자연을 상징하는 정원과 꽃,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연결다리이자 대비되는 인공물을 상징하는 로봇 병정을 배합해 놓았다. 그러나 해당 장면에서의 로봇 병정을 완전한 인공물의 상징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 군 요새에서의 병정과 정원에서의 그것이 가진 동기와 풍기는 분위기가 강력하게 대비된다. 이는 요새에서의 병정의 흑화는 선제 공격, 즉 인간의 폭력에 의한 결과이며 본래 모습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영화의 주제로 이어진다. 쇳 덩어리로 만들어진 로봇 병정이 아이들에게 꽃을 건네는, 평화롭고도 애틋한 장면은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철골렘이 아이템 장미꽃을 드롭하는 설정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이들과 거의 동시에 라퓨타에 도착한 무스카는 속내를 드러내고 시타를 납치해 라퓨타의 고대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로봇 병정들을 조종해 라퓨타까지 타고 온 비행선을 파괴하고 그 속의 군인들을 몰살한다. 라퓨타를 이용해 수천 년 전처럼, 세계 위 떠있는 공포의 제국을 강림시키려는 무스카에게 시타는 말한다.

“나라는 망했는데 왕만 있다니, 웃기지 않나요? 당신에게 돌을 넘길 수 없어요! 당신은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고 나와 죽는 거에요! 지금은 라퓨타가 왜 멸망했는지 알 것 같아요. 곤도아(시타의 고향. 라퓨타의 과거 왕족과 연관이 있다)의 노래에 나와있어요. ‘대지에 뿌리내려 바람과 함께 살아가자. 씨앗과 함께 겨울을 넘고 새들과 함께 봄을 노래하자.’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해도, 가여운 로봇을 수없이 많이 조종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대지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녀의 말은 더욱 강력해지기 위해 지상을 벗어나 라퓨타를 짓고 여러 무기를 단 인간들의 행동을 비판한다. 라퓨타에 덕지덕지 붙은 인간들의 흔적은 자연을 거슬러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의미 없는 바벨탑의 여러 모습들 중 하나일 뿐이다. 시타와 파즈는 라퓨타를 이러한 인간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멸망의 주문, ‘바루스’를 외운다. 그렇게 라퓨타는 인간들이 남긴 잔여물을 털어내고 거대한 세계수와 그 뿌리에 안긴 정원만을 남긴 채 높은 하늘 위로 떠오른다. 인공적으로 지어진 무기들이 떨어지고 도라 해적단과 아이들이 비행선을 타고 날아가면서, 미야자키는 인간의 몸이 발 붙이고 있어야 할 땅과 인간의 자유가 활공해야 할 하늘을 동시에 비춘다.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 (2025)

★★★ : 6/10

원색적인 공기가 새로이 드리웠다.

12월 18일부터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 [체인소맨]을 보고 흥미가 생겨 21일 보게된 영화이다. 개봉 후 3개월이 지나 꽤 뒷북을 친 편인데도, 상영관의 36자리가 꽉 채운 영화의 인기에 놀랐다. 애니메이션 12화를 모두 인상적으로 관람하기도 했고, 여러 곳에서 최상에 가까운 평가를 접해 기대가 아주 높았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만큼 기대한 영화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아래는 영화에서 탁월하다고 느낀 지점과 조금의 아쉬운 점을 정리하였다.

먼저 바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영화의 포스터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포스터 그 자체는 시각적으로 정말로 아름답다. 보라색 머리카락, 초록색 눈동자, 흰 피부와 셔츠, 푸른색 물결에 더해 빨간색의 피와 꽃이 보인다. 빨간색 없이는 어딘가 채워지지 않았을 색의 조합에 눈에 띄는 꽃을 추가하여 색감의 완전한 밸런스가 형성된 느낌을 준다. 포스터의 모티브가 된 전투 이후의 해변 장면과 천사의 악마에 의한 레제의 죽음 장면까지, 영화는 레제와 빨간색을 자주 붙여 놓는다. 작가처럼 포스터를 인상깊게 본 뒤에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은, 레제의 빨간빛 없는 평소의 모습에서 묘한 공백과 동시에 날 서있지 않은 포근함을 보았을 것이다.

레제의 눈 디자인은 그녀에게 캐릭터가 가지는 고유의 부드러운 인상을 관객에게 완벽히 각인시킨다. 레제의 눈모양은 [체인소맨]의 다른 여자 캐릭터들이 가진 두껍고 대칭적인, 직사각형에 가까운 타원형의 그것과는 다르게 위는 볼록하고, 아래는 비교적 평평하다. 영화는 이러한 차이점을 통해 그녀에게 색다른 인상을 부여하기 위해 그녀의 눈을 지속적으로 비춘다. 웃을 때는 오히려 둥글둥글함이 부각되는 레제의 눈을 바라보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차별점인 귀여움과 친근함을 느낀다.

본격적으로 영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레제와 덴지의 첫 만남 이후 그녀의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는 중반부까지의 분위기가 정말로 놀라웠다. 작가 개인의 취향일 순 있어도, 후반부의 엑션 장면보다 이 미묘한 로맨스의 지속이 들어간 노력과는 무관하게 더 높은 미학적 완성도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덴지의 솔직한 감정 서술과 레제라는 캐릭터 사이에서 형성되는 공기를 애니의 그것과 비슷한 완성도로 구현해냈다. 덴지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그의 마음속을 그대로 읽어주는 듯한 나레이션은 애니와 극장판 모두의 뚜렷한 특징이다. 이를 통해 작품은 남고생이 할만한 상상들을 가감 없이 시청자와 공유하며 그들을 덴지와 일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겐 불쾌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날것의 언어는 [체인소맨] 특유의 투박함을 대표하기도 한다.
해당 영화에서는 그러한 일치와 몰입을 위해 그의 내면의 소리뿐만 아니라, 바깥에 놓인 요소를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연출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장면이 바로 덴지와 레제의 학교 수영장 데이트 신이다. 학교 수영장에서 둘은 서로가 전라로 수영하는 모습을 본다. 주로 덴지의 시선으로 레제의 나체를 보여주는데, 스크린에 비춘 그녀의 모습은 성적이라기보단 인체 본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누드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화면에 빛을 배치하는 방식이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어두운 밤, 전등 아래에서 빛나는 물의 일렁임과 레제의 눈동자와 그녀의 밝은 피부는 찬란하게도 보인다. 일부 관객들은 다소 과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화려하게 연출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흰색 빛을 강렬하게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것 또한 덴지가 수영하는 레제를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고 몰입시키려는 감독의 의도인 것이다.

수영장 신 이후에 등장하는 레제와 의문의 남자 사이의 빠른 전투, 혹은 일방적인 제압은 가히 탁월한 액션 연출의 성과이다. 레제가 옥상까지 도망쳐 나온 뒤 궁지에 몰리자 자신을 추격했던 남자를 한 순간에 제압하는 장면을 깜빡이는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마치 남자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듯, 흑백에 가까운 어두운 색채가 빠르게 깜빡인다. 순간적으로 보이는 화면 속에서, 방금전까지는 물속에서 아름답게 빛났던 레제의 다리가 남자의 몸을 휘감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의 목을 조르는 레제의 눈동자에서, 관객은 일종의 '낙차'를 느낀다. 영화는 그녀가 부르는 소름 돋는 노래와 함께 여러 장소를 비춰주며 그곳 바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찬찬히 확인시킨다. 곧바로 태풍의 악마를 알아보는 레제의 대사까지, 작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기묘하게 바뀐다.

그리고 덴지와 축제에 간 레제는 그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뒤 폭죽 속에서 그와 키스한다. 그때 덴지의 혀를 잘라버리면서 정체를 완전히 밝히고,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엑션 시퀀스가 펼쳐진다. 레제와 덴지, 상어 마인 빔 간의 전투 장면의 작화는 관객을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풀 2D로 제작하면서도 시시각각 바뀌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색채 활용은 잊을 수가 없다. 별다른 말이 필요 없는, 애니메이터들의 갈려나간 영혼이 최대치로 효과를 낸, 폭발적인 명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길게 유지되는 화려한 액션에서도 세부적인 연출법을 달리해 관객의 피로감을 해소하고 몰입을 유지시키는 능력과 집요함이 놀라웠다.

마지막으로 애니에선 후반부에 잠시 등장한 천사의 악마 케릭터를 잘 구체화해냈다. '천사의 악마'라는 모순된 조합에 걸맞게, 작품에서 항상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악마라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듯한 말을 하며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어떻게 보면 그것에 도달해내는 눈빛을 보여준다. 히메노가 죽은 뒤 아키가 배정받은 새로운 버디로서 그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덴지와 레제의 전투에서 태풍의 악마에 휩쓸린 그를 끝까지 붙잡으며 줄어드는 수명도 감수한 아키의 모습은 전형적이지만, 몇 가지 특별한 점도 있다. 우선 영화는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진 '마음'이라는, 시리즈가 가진 주제 중 하나를 부각한다. '악마에겐 마음이란 게 없다' 란 문장의 힘을 희석시키지 않으면서도, '인간에겐 마음이란 게 있다' 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강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천사의 악마를 끌어안은 아키의 구도가 인상적이다. 정면으로 조금 내려다보는 정석적인 구도를 사용하면서, 인간이 천사의 날개에 안겨있는 흔한 구도에 변주를 주어, 인간이 날개를 접은 천사를 안아주도록 설계한 것이 그러하다.

아쉬웠다고 할 수 있는 점을 모아서 살펴보자.
작가 개인이 품고 있던 기대였지만, 레제와 덴지 사이에서 미묘하게 유지되는 로맨스의 비중이 조금이라도 컸다면 더욱 완성도 있는 영화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수영장 신과 같이 감정적인 장면도 잘 연출해내는 것을 보니 이를 더욱 깊게 활용할 기회가 보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악마의 모습으로 변신한 레제의 디자인에 조금 놀랐다.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개인 취향이다. 그만큼 이를 포기하고 얻어낸 후반부의 액션신 또한 훌륭했다는 뜻이다.
음악과 배경음의 활용 또한 애니와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한 장소의 고요나 배경에 깔린 소리를 다루고 분위기로서 활용해내는 능력은 애니가 더욱 성숙하다고 할 수 있다. 애니는 활기, 고독, 슬픔 등의 다양한 정서를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소름 돋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도시의 소리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히메노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본 아키가 병원에서 깨어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병실 창문 안과 밖을 이동하며 소리의 차이를 보여준다. 자동차의 소리, 사람들이 걸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바깥 세상과, 완전히 고요한 병실 안이라는 공간은 소리를 통해 구분되고, 이는 아키의 허무함과 고립감을 영상으로 옮겨낸다. 신의 분위기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 탁월한 사운드 디자인이다. 이에 반해 영화는 수영장 신과 같은 장면에서 피아노 음악을 삽입한다. 그리고 이 음악이 반복되는 전투의 마지막인 수장 장면에선 다소 시끄럽게 느껴지도 했다.
작품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도시쥐와 시골쥐 비유와 영화의 주제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위험과 안정 사이의 선택이라는 주제를 내포하고, 이가 후반부 마키마의 입에서 변주된 것은 이해하겠으나, 영화 전체에서 최적의 위치를 차지하는 인상은 아니었다. 이에 대한 천사의 대사('마키마가 날 시골에서 도시로 끌고 왔어')가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레제가 도시쥐와 시골쥐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선 좀더 희망적이거나 밝은 색채를 넣는 것이 작품 전반부의 정서에 더욱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를 통해 천사의 악마와의 대비 구도를 형성하고 이후 반전의 무게감을 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덴지의 임시 버디가 된 빔의 캐릭터성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뚜렷하지 않았다. 기존의 인물들을 활용해 이에 상응하는 역할을 찾아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킨 이유가 의문이다. 꽤 시끄러운 캐릭터로 등장하여 주위를 집중시키지만 그 이후에 하는 일들이 영 시원치 않았다.

눈에 띄는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예술적인 면에서 예상보다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수영장 신에서 조율해낸 특별한 공기는 애니에선 보지 못했던 우아함마저 가지고 있었다. 후반부에 길고 화려하게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들의 끊이지 않는 연속은 그 높았던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는, 영화의 놀라운 완성도를 증명한다. 글 마지막에 조금만 언급했으나, 정장을 입은 천사라는 미묘하고, 어떻게 보면 전형적으로 강렬한 디자인의 인물을 참신한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영화의 흐름이 탁월했다. 그렇게 [체인소맨: 레제편]은 레제와 덴지 사이의 어리고도 청순한 형태, 그리고 천사의 악마와 아키 사이의 허무를 포용하는 애정적인 형태, 두 가지 모습의 사랑을 보여준다.


[마보로시] (2023)

★★★★ : 8/10

현실과 환상, 영원과 끝. 그 크나큰 간극으로 쌓아올린 사랑하는 삶의 모호. 끝없이 아득해지고 아파지며, 황홀하다.

작가의 복잡한 취향에 거의 정확히 들어맞는 작품을 오랜만에 발견한 느낌이었다. 모든 장면을 집중한 채로 감상해서 그런지 100분 남짓의 러닝타임임에도 3시간 되는 긴 영화를 보는 듯했다.
인물들 외에도 이들을 둘러싼 환경에 부여된 참신한 설정들이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서사 구조와 스튜디오 MAPPA가 연출해낸 황홀한 작화까지, 애니메이션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많은 장점들을 극단까지 갖춘 작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마야자키의 [천공의 성 라퓨타],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 아이]와 더불어 각자가 서로에 반대되는 방향성을 갖춘 채 최고의 성과를 낸 작품 중 하나라고 묶어 설명할 수도 있다.

작가의 취향에 들어맞는다는 말을 해당 작품에 맞추어 구체화 시킨다면 '지독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판타지라는 장르적 특성을 일부 고려하더라도 의아하거나 툭 튀는 장면을 그렇지 않은 척 하며 삽입하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작가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그러한 독특한 화법이 충분히 적응 가능하며 의미 있다 느껴진다면 완전한 이해와 공감 없이도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마보로시]는 순간적인 의아함을 잊을 정도로 강렬한 공기를 작품 전체에 깔아둔다. 따라서 작품의 가장 뛰어나고 와닿는 장점은 덩어리 진 시청각적 상징들과 분위기, 그리고 그것이 가진 문학적인 추상성과 모호함에 있다.

작품은 제철소 폭발 사고 이후 배경이 되는 제철소 마을, 미후세와 외부 세계를 시공간적으로 분리 시키며 시작한다. 미후세에서는 수십 년이라는 기간 동안 외부와의 물리적 출입이 불가능해지고, 노화나 계절 변화 등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는 변화들이 사라졌다. 바로 여기서 같은 일이 반복되기만 하는 일반적인 타임루프물과의 차별점이 드러난다. 아무것도 변화하거나 성장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 학생 일행은 일종의 영적인 고립을 경험한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특유의 비관은 시간의 정지라는 물리적 조건을 떼어 놓고 보면 꽤 보편적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러한 영원과도 같았던 지속의 끝을 다룬다. 이를 위해 등장한 '지금의 미후세는 현실이 아니다'라는 공표이자 영화적 선언은 '끝'이라는 순간이 다가옴을 밝히는 동시에, 근본적으로도 인물들의 존재성에 대해 허무로 일관하는 성격을 보인다. 피상적 연결에 반하여 아이러니하게 형성되는 특유의 고립과 영원할 것으로 여겨지던 존재와 가치의 해체라는 현대적인 불안의 단면들을 담은 것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미후세 마을 특유의 미스테리한 공기와 함께 '사랑'이라는 개인적 주제를 여러 측면에서 다루며 그 층위를 확보해 간다. 마사무네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소노베의 모습과 말로, 무츠미를 좋아한다고 적는 마사무네, 이츠미를 향한 무츠미와 마사무네의 모성/부성과 같은 시선, 이츠미가 보여주는 알 수 없는 행동들 등이 있다. 영화의 전반부 흐름을 사랑이라는 관점과 함께 따라가다 보면 마치 사람의 인생에서 사랑이 가지는 형태들을 하나 둘 씩 마주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무츠미와 마사무네의 키스는 그 다양한 형태들을 하나의 장면과 주제로 수렴시킨다. 그 둘 간의 묘한 관계가 그렇게 구체화됨과 동시에, 영화는 사랑현실을 느끼게 하는 대상으로서 구체화한다. 곧 끝나 사라질 환상의 세계 속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사랑을 동력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무츠미가 자신에게 고백하는 그에게 우리들은 현실의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는 묘하게 압도되는 긴장이 서려있다. 그러다 눈 위에 넘어진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마사무네는 이츠미가 호기심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처럼, 자신도 그녀를 바라볼 때 현실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둘의 시선을 보여주는 클로즈업을 오랫동안 사용하는데, 얼굴을 크게 비추는 그러한 구도 자체에 대해 고찰해 보게 될 정도로 스크린에 담긴 공기의 밀도가 놀라웠다. 그리고 이때 하늘에 균열이 커지며 드러난 현실의 여름에선 비가 내린다. 수십 년의 겨울 끝에 내리는 그 비는, '그 겨울 눈 속에서'와 '그 여름 빗속에서' 를 한 순간에 모두 보여주며 특별한 낭만을 조각해낸다. 주제적인 무게감과 더불어 특유의 아련하고도 애절한 낭만이 깃든 분위기를 형성하는 개성적인 미학까지, 다방면의 관점에서 작품 내 가장 강렬하고 중요한 순간을 감독은 그렇게 완성한다.

이때 [마보로시]가 사랑을 다루며 개성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태도는 바로 에로스를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위 키스와 더불어 눈물을 흘리는 마사무네의 얼굴을 이츠미가 혀로 핥아주는 장면처럼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러한 성격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사랑을 깨닫는 주인공' 을 다루는 여타 작품들과 달리 순수함이나 풋풋함을 주된 정서로 내세우지 않는다. 거시적으로 보면 현대 문학이 향하는 방향성 중 하나에 편승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이 정지된 시간 속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 온 것을 알고 보아도, 외모부터 독백의 대사까지 영락없이 드러나는 학생의 모습과, 그와는 사뭇 다른 그들의 행동이 화면에서 미묘한 대비를 일으킨다. 그렇게 작품에서 '현실'에 가장 가까운 순간인 사랑을 하는 때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왠지 꿈을 꾸는 듯한, 비현실적인 공기가 드리운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는 정말 어렵게 써낸 글이다. 영화를 처음 감상한 직후부터 작성했으나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글감으로서 정리되지 않고 계속해서 추상화된 체로 머릿속을 떠도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관계 없이, 어쩌면 더 좋아할 수록 영화를 글로 옮겨내기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보로시] 같은 영화를 분석적으로 해부하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평론가 히카와 류스케가 말한듯이 분석을 거부하는 영화도 있다는 뜻이다. 영화를 즐겁게 감상한 기억과 황홀한 감정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꼭 재관람해 정복하고 싶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