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Introduction to Quantum Physics-1. 빛의 이중성과 물질파 이론

양자역학은 무엇일까? 사실 양자역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어도 한번쯤은 접해본 분야가 아닐까 싶다. 신기한 현상 몇 가지를 소개받고 우와 신기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이것저것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신기하고 호기심은 생기는데, 막상 배울 엄두는 나지 않는, 그런 분야라고 생각한다. 현대 이론물리답게,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형대수, 편미분 방정식과 같은 심화 수학을 비롯해서 고급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이해를 요한다.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편에 속하며, 그렇기에 더욱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나 싶다. 대표적인 식,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만 보아도 굉장히 복잡한 기호들이 나열되어 있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보아도 시작부터 겁을 주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I think I can safely say that nobody understands quantum mechanics" -Richard Feynman

이런 말들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그 영향일까. 오히려 양자역학이 더 어렵고 멀게 느껴지고, 접근하기 점점 두려워지는 것 같다. 심지어는 파인만조차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 양자역학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이 명언에는 허점이 있다. 과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함은 아예 그 분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닌, 양자역학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무지의 인정에 더 가깝자는 점 말이다. 양자 얽힘과 양자 중첩, 관측 등의 정확한 메커니즘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각각의 현상들과 활용에 대해서는 이미 꽤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그러니 물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우리 또한 그 일부분이라도 찍먹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현대 기술에서 이미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또한 앞으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질 학문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양자역학이 이야기하는 바를 소개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양자역학이라는 말을 생각해보기 전에, 양자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이란, 당연하게도, 양자를 다루는 학문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양자란 무엇인가? 사실 양자역학이란 말을 반복해서 들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의미는 생각해볼 일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양자의 학문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이중 6번이 '양자역학'이라 할 때의 그 양자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의 단위. 사실 이가 시사하는 꽤나 놀라운 사실이 있다. 바로 에너지에 최소량의 단위가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연속적인 값이지 않던가? 우리는 한 물체에 힘을 점점 더 세게, 점점 더 약하게 가할 수 있으며, 그 강도는 얼핏 연속적으로 보인다. 물체가 0, 혹은 1의 에너지를 가질 수 있으나 1/2의 에너지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은 터무니없게 들린다. 그러나 사실 에너지는 불연속적인 데이터이다. 이를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독자가 지금도 들여다보고 있을, 전자제품의 스크린을 생각해보자.

전자기기의 갤러리 탭을 열어 아무 사진이나 띄워보도록 하자. 그 사진을 멀찍이서 바라보라. 어떻게 보이는가? 아마도 부드러운 곡선들이 어우러져 현실적인 이미지가 보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사실 이 그림 역시 불연속적인 단위체인 픽셀로 이루어졌다. 그저 그 단위가 너무 작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연속적이라고 인지할 뿐이다. 사실 그 화면을 이루는 픽셀들은 불연속적인 밝기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픽셀 일러스트를 보면 그 사실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각형 모양의 불연속적인 칸들이 있고, 각각의 칸들은 한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때, 픽셍릐 크기를 점점 줄여나가다보면 어느 순안 우리의 뇌는 이를 불연속적인 픽셀로 인지하지 않는다. 마치 스마트폰의 화면처럼 연속적인 값으로 처리하게 된다. 에너지 또한 마찬가지다. 그 단위가 너무 작기 때문에 우리는 그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착각하고 있을 뿐.

그렇다면 에너지는 어떤 형태를 갖게 될까? 최소량의 단위가 있다고 한다면 직관적으로 입자처럼 느껴진다. 마치 픽셀처럼 말이다. 파동은 연속적으로 변화하고, 또 파동이 갖는 에너지의 양도 연속적으로 변하니 말이다. 그러나 빛에너지나 소리에너지와 같이 파동의 형태로 전달되는 에너지들이 많다. 그렇다면 에너지는 입자인 것일까, 파동인 것일까? 사실 이러한 논쟁은 빛을 두고 굉장히 오랜 기간 진행되어 왔다.

광자라는 말이 있다. 빛 알갱이라는 뜻이다. 사실 빛은 오랜 기간 입자라고 믿어져왔다. 그 대표적인 이유이자 입자설의 지지자는 아이작 뉴턴이다.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저서 [광학]에서 빛은 입자라고 주장하였다. 예컨데, 빛의 직진성 때문에 그러했다. 빛이 만일 파동이라면 물체를 만났을 때 회절되며 부드럽게 감싸야 하는데, 물체 뒤에는 빛이 막혀 그림자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또한, 뉴턴에게 세상은 '물체와 힘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빛 역시 직진하고, 튕기고, 꺾이는 성질을 보아하니 "엄청나게 가볍고 빠른 미세한 알갱이들의 행진"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곧이어 빛이 사실은 파동이라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뉴턴의 견해를 뒤집어버린 실험이 있었으니, 바로 영국의 과학자 토마스 영이 발표한 이중슬릿 실험이다. 이중슬릿은 말 그대로 나란히 있는 두 개의 슬릿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중슬릿에 빛을 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빛이 만일 입자라면 반대쪽 스크린에도 아란한 두 줄이 생길 것이다. 뉴턴이 말한 직진성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는 이와 달랐다. 밝기가 서로 다른 여러 줄의 모양이 나왔다. 사실 이 무늬는 파동을 이중슬릿에 통과시켰을 때 회절 후 서로 간섭을 하며 나타나는 '간섭무늬'였다. 이 실험에 따르면 빛은 파동의 성질을 띤다는 의미가 된다.

이 충격적인 실험 하나로 물리학계는 뒤집혔다. 이 실험의 결과에 따르면 빛은 파동일 수밖에 없었다. 이 경쟁은 파동설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과학이란 언제나 반전의 연속이던가. 이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시점, 빛의 입지를 바꿔줄 또 한명의 천재가 등장한다.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광전효과'라고 불리는 현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얇은 금속판에 강한 빛을 쬐어주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이 때, 전자가 많이 튀어나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빛을 강하게 하고 파장을 짧게 해서 빛의 에너지를 키우면.... 되지 않는다. 파장을 짧게 하는 것은 직접적이고 분명한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밝기의 관계는 무언가 이상했다. 파장이 짧을 때에는 밝기가 밝을수록 점점 전자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파장이 길 때에는 빛을 아무리 밝게 비춰도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는 것이다. 만일 빛이 파동이라면 빛의 밝기가 밝을수록 빛의 진폭을 크게 한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파도가 높을수록 큰 에너지를 갖는 것처럼, 빛 또한 밝을수록 큰 에너지를 가져야 했다. 그러나 튀어나오는 전자의 수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 천재 아인슈타인은 신박한 역발상을 해낸다. 빛이 입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발상으로 광전효과의 문제는 해결되고,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거머쥐게 된다. 빛이 입자라 한다 해도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날아와서 전자에 부딪히는 광자의 수가 많을수록 더욱 많은 전자가 튕겨나가지 않을까? 어느 정도까지는 정확하다. 광자가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전자에 부딪힌다면 이런 경우가 성립한다. 그러나 전자가 튕겨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 그 에너지보다 작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경우라면 전자를 튕겨내기 위해서 최소 2개의 광자가 동시에 그 전자에 부딪혀야 한다. 광자의 수가 아무리 많아진들 이럴 확률은 몹시 작으며, 따라서 전자 하나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커지는 것과 달리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이러한 '광양자설'로 인해 빛의 입자성이 실험적으로 입증된다.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다는 빛의 이중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이러한 결론은 정말 오묘한 것이였다. 입자와 파동은 명백히 다른데, 빛이 그 두 성질을 동시에 띠고 있다고?

그렇다면 그 대상이 빛뿐일 이유는 없잖은가.

만일 빛이 파동이라면, 너무나도 명백한 입자인 전자 또한 파동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이 물질파 이론의 시작이였다.

물질파 이론의 대략적인 내용을 소개하자면, 모든 물체는 사실 공간에 파동의 형태로 퍼져있을지도 모른다는 이론이다. 황당한 소리이긴 하다. 광자나 전자를 넘어서서 원자, 분자, 물체, 심지어는 인간과 같이 복잡한 존재마저도 파동의 형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현재 사실로 밝혀졌고, 현재 25000amu라는 엄청난 분자량을 가진 큰 분자에서도 파동의 성질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런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그런 큰 분자에 파동의 성질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이중 슬릿 실험.

기존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는 빛, 혹은 광자를 슬릿에 쏘았다. 그 결과 입자성과 파동성이 드러났다. 신기한 것은, 전자총으로 전자를 쏠 때에 대해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전자를 하나씩 쏠 때, 스크린에는 전자가 하나씩 관측된다. 이 때, 이렇게 모인 전자 위치 데이터를 분석하면 그 분포가 간섭 무늬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간섭'무늬라고 했다. 간섭을 일으키려면 최소한 2개의 대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간섭을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전자 하나는 어떻게 '간섭'무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혹시 하나의 전자가 둘로 쪼개어져서 각각 다른 슬릿을 통과한 뒤 서로 간섭을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전자가 어떤 슬릿을 통과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이를 측정해보기로 했다. 슬릿 두 개 사이에 전등을 달아서 그 전등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자의 그림자를 포착하기로 한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과학자들은 전자가 어떤 슬릿을 통해 반대쪽 스크린에 도달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자는 항상 두 슬릿 중 하나만을 통과해서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간섭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일어나지 않았다.

전자가 통과하는 슬릿을 측정하자, 전자의 분포는 간섭무늬가 아닌 선명한 두 줄의 모습으로 나왔다. 하지만, 측정하는 기계를 뺄 경우 다시 간섭무늬가 만들어졌다.

이상한 상황이였다. 이를 일반적이고 거시적인 세계에 대입해서 생각해보자.

밤에 보름달이 떠 있다고 하자. 우리는 보름달이 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눈을 감는다. 나는 더이상 저 달을 측정하고 있지 않다. 그래도 달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관측 여부가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니 말이다. 실제로도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

Is the moon there when nobody looks? -Albert Einstein

"만일 우리가 달을 관측하지 않고 있다면 과연 그 달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다. 거시 세계의 상식으로는 당연히 존재하는 게 맞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 세계에서는 이 상식이 보기 좋게 깨진다. 우리가 보지 않을 때, 전자는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저 '존재할 확률'로만 출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직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황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수많은 실험과 수학적 계산은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실제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이 기묘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 바로 '양자 중첩'이다. 관측하기 전에는 여러 개의 상태가 동시에 겹쳐서 존재한다는 이 신기한 규칙은,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양이 한 마리'를 탄생시키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함께, 양자 중첩의 진짜 정체를 더 깊이 파헤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