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 Organic Chemistry - 0. 유기화학이란?
유기화학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이따금 수십 년간 유기화학을 연구한 화학자들에게 있어서도 골치 아픈 질문이다.
케임브리지 사전에 "Organic Chemistry"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The scientific study of chemical substances that contain carbon, including artificial substances such as plastics"
이 정의에 따르면, 명백히 탄소가 들어간 물질인 다이아몬드는 유기화합물이고, 따라서 유기화학 교과서는 다이아몬드의 구조와 성질에 대해 자세히 다룰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탄소가 들어간 물질"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고, 또 다양하다. 글을 쓰는 연필의 흑연도 탄소로 이루어져 있고, 심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역시 탄소가 들어가 있다. 우리가 숨을 내쉴 때 나오는 이산화 탄소 역시 탄소가 들어가 있다. 이렇게나 다양하고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들을 "유기화학"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위에서 언급된 케임브리지 사전에 등재된 유기화학의 정의는 2025년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정의지만, 만약 이 글이 200년 전에 쓰였다면 뒤에 붙은 “including artificial substances”라는 구절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유기화학은 원래 생명체에서 유래한 물질을 다루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200년 전, "organic compound"라는 말은 생물에서 유래한 화학 물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엔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있어, 생명체의 도움 없이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1828년, 이를 뒤집을 발견이 일어난다. 과학자 프리드리히 뵐러 (Friedrich Wöhler)가 무기물인 사이안산 암모늄 (NH₄OCN)을 가열하면 유기물인 요소 (CO(NH₂)₂)가 만들어짐을 밝혀낸 것이다.
이 실험을 기점으로, 유기물의 정의가 "생명체에서 나온 물질"에서 "탄소를 포함하는 물질 중 일부"로 바뀌게 된 것이다.
현대에 와서도 무엇이 유기물이고 무엇이 유기물이 아닌지 딱 잘라 말하는 건 어렵다.

위 그림에서 묘사된 끔찍하게 생긴 물질은 루테늄 원자가 들어가 있지만, 탄소 원자가 43개나 붙어 있다. 이런 유기금속 화합물들이 연이어 합성되면서, 유기화학의 경계는 현재 다소 모호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일반적으로 유기화학이라고 생각되는, 즉 유기화학 서적을 펼치면 나올 법한 내용들을 다룰 것이다.
앞으로 여러 편을 연재하면서 유기물의 구조와 반응에 대해 다루고자 하니, 화학을 전공하는 이들 중 유기화학을 배우지 않았다면 한 번쯤은 공부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