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KSA 백일장 산문 부문 출품작 -<여름 밤의 눈사람>
올해에도 학교 백일장 산문 부문에 소설을 하나 써냈다. [여름 밤의 눈사람]은 작년 백일장에 출품한 [우리들]과 비교했을 때, 정반대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물론 가장 먼저 나 자신의 작품 스타일이 1년 동안 달라진 것을 이야기해야겠지만, 그런 내부적인 요인만이 작용한 결과는 아니다. 올해의 백일장은 A4 다섯 장이라는 분량 제한이 존재했고, 작년에 비해 일정이 대회 일정이 빠듯했으며, 주어진 재제들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그 때문에 작품 속에 나 자신만의 색감을 적극적으로 담아내기가 조금 어려웠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작년과 같은 시간과 재제가 주어졌다고 해서 [우리들]과 같은 작품을 또 써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작품에 정감이 가는 정도에서 차이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은 든다.
[여름 밤의 눈사람]이 [우리들] (혹은 [노을이 질 때])와 비교해 가지는 또 다른 차이점은 [1Q84], [메멘토], [상실의 시대] 등의 외부 작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장치를 차용하지 않고, 말하자면 독자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작품 속 눈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최승호 시인의 [눈사람 자살 사건]에서 빌려온 것임은 사실이지만, 그 핵심과 관점이 작품 전체의 주제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문체 상으로는 아직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이 남아있긴 하지만, 최근에 읽은 한강의 초중반기 작품 [바람이 분다, 가라]의 것을 일부 따오기도 했다.
다시 첫 문단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그런지 해당 작품에 대해 개인적으로 얼마나 만족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티브나 상징들 간의 연결이 끈끈하고, 문체적으로 더욱 안정화되었거나 단정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다시 읽어보는 작가의 입장에서, 소설의 중심을 잡는 기둥을 제대로 세워두지 않은 채로 포장만 해 마무리해둔 느낌도 든다. 또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식상하다고 해야 하나, 훨씬 적은 분량으로 구성하더라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길게 적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분위기와 묘사, 연결성이 좋으니 그런 것들에 집중해서 읽는다면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간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언젠가 ‘이제는 죽지 않을 이유도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때가 오더라도 별로 섬뜩하게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때에 생각하는 나라는 개인의 죽음은 전혀 무섭거나 상징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마치 측면에서 노랗게 비쳐오는 일출의 양지 속에서, 눈사람이 따뜻한 겨울비를 맞으며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눈사람은 아마도 차갑고 건조한 음지에서든, 포근하고 보슬보슬한 겨울비 아래에서든, 결국 녹아 사라지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려 한다는 것을 해의 길이로 알 수 있었다. 사무실을 뜰 때 본 손목시계는 오후 7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지하철 역 입구까지 걸어가서도 해가 떠 있는 게 보였다. 2열 종대로 나란히 서 있는 것 같은 각기 다른 키의 건물들 사이로 주황색 광구가 마지막 빛을 강렬하게 뿜어내는 것이 보였다. 실낱같은 구름은 태양 빛을 반사해 빛나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지상에서는 구름의 이동과 반대 방향의 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졌다. 초여름 특유의 모호함을 품고 있는 바람이었다. 모호한 온도와 모호한 습도, 그리고 모호한 냄새와 모호한 자신감을 가지고 다가와 살며시 공간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그러나 그 모호함에는 그것이 자연적이라는 인상도 분명히 포함되어있었다. 이를테면 도시적이지 않은 면이 있었다. 이런 도시에서는 흔히 찾아오지 않고 흔히 인식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런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지하철 역에서 차가운 에어컨의 냄새를 품은 공기가 올라왔다.
지하철 내부는 한산했다. 네다섯 자리를 빼고는 전부 비어있는 수십 개의 초록색 플라스틱 의자들을 천장에 붙은 둥그런 형광등이 계속해서 비추고 있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보니, 새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이 아주 특이한 형상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천 개의 지점을 잇는 수천 개의 터널 사이사이를 이와 같은 모습을 한 수천 개의 열차가 언제까지나 누비고 다니는 것이다. 그중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나는 열차 안에 내 몸을 싣고 터널 속을 빠르게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이 열차와 함께 언제까지나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그런 일을 언제까지고 반복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가 진정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몇 개의 의자를 채우고 있는 저 사람들도 이 세상의 특정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어릴 때는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이 세상의 한 부분에 독자적이고 고유한 자국 같은 것을 남기고 갈 수 있다고.
목적지 역에 도착해 출구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이미 져 있었다. 눈 앞의 공간에서 빛은 어느 순간 흩어지고, 반대로 어둠은 그 빈자리를 메우며 차츰 선명해져가는 그런 시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시절을 체계적으로 기억해낼 수 없었다. 몇몇 사람의 인상과 그 사람들과 했던 대화, 그 공간의 분위기 같은 것은 떠올렸지만, 지역명과 그들의 이름, 구체적인 생김새 같은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전체와 세부 모두에서 각자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얼굴과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에 대한 생생한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몇몇 요소들은 의식 속에서 선명하게 재현되지만, 또다른 요소들은 알아볼 수 없이 뭉뚱그려져 있는 것이다. 더욱 세부적인 것, 구체적인 것을 떠올리려고 할수록 그것들은 더욱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왜 지금에 와서야 그것들을 기억하고 싶어진 것일까.
나는 무엇인가를 어딘가에 두고 와버린 것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절대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 없는 어딘가에 두고 와버린 것이다.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되찾을 수 없다.
되찾을 수 없다는 것과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어쩐지 서로와 나란히 존재하는 단어처럼 보였다.
*
그곳은, 아니면 그때는 여름이 지금처럼 덥진 않았다. 한여름을 지나는 7월 말에도 밤이 되면 지금 이곳과 비슷한 온도로 내려갔던 것 같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매해 눈에 띄게 더워져 요즘의 푹푹 찌는 한여름까지 와버린 것이다.
때문에 나는 자기 직전에 언제나 내 방 창문을 열어두었다. 그렇게 해두면 시원한 바람이 가끔씩 퍼뜩 생각난 듯이 커튼을 펄럭이며 방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내 방 창문 바로 앞에 자라 있는 가로수에서 풀벌레들이 낸, 자신들이 정말로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침묵을 깨는 음성이라 하면 옅게 흐르는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뿐인 공간에서,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다 보면, 그 소리들이 아주 먼 어딘가의 배경에서부터 들려오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또 동시에 그 소리들이 나를 가까이에서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는 소리라고도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느낌을 기분 좋게 생각할 때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때도 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 9시가 넘게까지 늦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땐 한여름 아침의 청람한 하늘색 빛깔이 커튼을 통과하면서 조금 불투명하고 뿌예진 상태로 내 방의 직육면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하얀 천 서너 장을 포개 놓은 것 같은 얇은 이불을 걷어내고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연한 하늘색의 공기를 내 몸에 들여 구석구석까지 순환시켰다. 그 공기의 온도나 냄새 같은 물리적인 성질이 왜인지 생소하게 느껴졌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고 몸을 일으키기 전까지도 그 공기는 그 공간에 조용히 존재하고 있었을 텐데. 나는 창백해진 푸른빛의 공기가 가진 온도와 냄새에 대해 꽤 긴 시간 동안 생각했다. 그 공기에는 배경음이 되어서라도 그 자리에 남아 있던 밤의 소리들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집 안은 예상대로 텅 비어있었다. 부모님 두 분은 이미 일하러 나갔고, 누나는 공부하러 자주 가는 집 근처 독서실에 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누나가 가 있는 곳이 독서실이 아니라 학원일 수도 있지만, 물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와의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흰색 러닝셔츠를 꺼내 입은 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오와 열을 맞춰 인쇄되어 있는 단어들과 문장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쫓았다. 지금 주인공이 있는 장소의 조명, 온도, 향기 같은 것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떠올려 보았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가장 많이 결정짓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놓여있는 장소의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나는 소설책을 읽을 때 인물이 놓여있는 당장의 물리적 배경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인물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각하게 될 것 같은 해당 장소의 여러 가지 특징들에 집중한다. 사람이 자신이 속한 장소를 감각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그 장소의 물리적 특성만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어떤 신경은 예민해지고 어떤 신경은 둔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감각에 의해 결정된다.
책을 덮고 소파에서 일어나 나는 입고 있던 러닝셔츠 위에 얇은 하늘색 원단의 셔츠를 걸치고 단추를 잠갔다. 회색 반바지를 입고 주방에서 물을 한 잔 따라 마신 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그늘 아래에서 나를 발견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여기.” 그녀는 말했다. “그런데 나 너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 불러대면서 끌고 다니는 거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좀 미안한데.”
“뭐, 억지로 오는 건 아니야. 어차피 방학 동안은 일정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데.”
“팔자가 좋네.”하고 그녀는 조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바람이나 쐬면서 기분 전환이나 할까, 하고 나오는 거지.”하고 나는 맞받아쳤다. “생각해보면 기분 전환해서 할 일도 없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뒷목을 손으로 문질러 땀을 닦았다.
“그런데 누나분은, 아직 좀 바쁘시지 않아?”
“어 그렇지, 지금도 독서실이나 학원에 있을걸? 정확힌 모르겠는데.”
“음 그렇겠지.” 그녀가 작게 말했다. “누나 분이 고생하시는 것도 고생하는 거지만, 제일 무서운 건 그게 2년 뒤 우리 미래라는 사실이지.”
과장해서 탄식하는 나를 보고 그녀는 쿡쿡대며 웃었다.
나는 조금 따라 웃고 말을 이었다. “누나 같은 생활 속에선 아무래도 하기 싫은 공부를 꼭 해야 한다는 게 진짜로 고통스럽지. 하기 싫다, 지루하다 하는 생각이랑 해야 한다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막 싸우면서, 그러면 또 머리는 산만해지고. 그래서 그 과목 공부를 시작하기만 하면 집중이 안 되다보니까 그 과목이 더 싫어지고… 악순환이야, 악순환. 끊어낼 수 없는 악순환.”
“악착같이 끊어내거나, 악착같이 견디거나…” 그녀는 기억에 남은 대사를 되뇌듯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덥다면서 나를 건물 안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노란색 폴로 셔츠에 짧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심플하고 밝은 노란색의 셔츠와 밑단이 해진 디자인의 짧은 청바지는 색감도 분위기도 서로와 잘 어울렸다. 머리카락은 언제나와 같이 아래로 당기면 셔츠 카라에 닿을 듯 말 듯한 길이의 단발이었다. 또 강한 햇살 아래에서는 정수리 부근에 둥그런 광택이 희미하게 생기는 검은색의 직모였다. 그녀의 얼굴이 어떤 인상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얼굴을 떠올리려 할 때면 지금까지 만나온 다른 단발머리 여자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겹치고 뒤섞이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다만 그녀가 특출나게 활기찬 건 아니더라도 언제나 웃고 있었다는 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보다 조금만 작은, 여자치곤 큰 체구였던 것도. 기억 속의 그녀는 그런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이목구비의 윤곽만이 희미하게 그려진 채로 주위를 스쳐가는 만화 속의 배경 인물처럼, 웃는 입을 얼굴 아래에 달고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배경 인물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좋아보이는 식당을 하나 골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꺾이는 통로 양옆으로 서로와 어깨를 나란히 늘어서 있는 다양한 음식점들 사이, 평범해 보이는 냉면집이었다. 둘러보는 동안 그녀는 “이렇게 건물 안에서만 돌아다니니까 시원하고 좋다, 이렇게 더운 날에.”하고 말했다. 식당에 도착해 우리는 마주보는 2인용 테이블에 앉아, 각자 냉면 한 그릇과 중앙에 두고 나눠먹을 만두 한 접시를 주문했다.
물통을 가져다주던 종업원은 그녀의 옷에 물을 조금 흘렸다. 사과하는 종업원에게 그녀는 많이 젖은 것도 아니니 괜찮다며 물기를 손으로 닦아내고 웃으면서 말했다. 물은 그녀의 노란색 폴로 셔츠 가슴께, 희미하게 어두운 얼룩으로 잠시 남아있었다. 물기라고도 할 거 없는 그 연한 얼룩이 차츰 엷어져 사라져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적은 양의 물이라고 해도 그렇게나 빠르게 마르는 것이 신기하다고, 나는 그 얼룩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치 내 의식의 작동이 조금 느려져서, 나만이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똑같은 건물 안에 있는 테이크아웃 카페에서 마실 것을 한 잔씩 샀다. 나는 얼음이 잔뜩 든 밍밍한 라떼를 주문했고, 그녀는 밀크티를 마셨다. 똑같은 플라스틱 컵에 담긴 음료 두 잔의 색이 비슷해서 무엇이 누구 것인지 알아내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녀는 플라스틱 빨대로 얼음을 달그락달그락 휘저으며 밀크티를 섞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우리는 의자 하나를 골라 그 위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휴대 전화에서 찍힌 지 제법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흑백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 사진 속에선 한국인 여자와 군복을 입은 백인 남자가 흙 마당에서 툇마루로 오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사진이야? 6.25 때, 아니면 그 직후 때 찍은 사진인가?”
“어, 파견 온 미군이랑 한국인 여자 사진이지. 둘이 결혼해서 상황이 좀 진정된 다음에는 미국으로 가 죽 살았대.”
“음”하고 나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그 둘은 확실히 부부나 연인 관계로 보였다. “그런데 이건 왜 보여준 거야?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또 있나?”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평소에도 흑백 사진 보면 생각나는 게 있어서.” 그녀는 말했다.
“흑백 사진을 보면?”
“그러니까, 이 흑백 사진이 찍혔을 당시에도, 세상이 흑백이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사람들 눈에는 완전히 지금과 똑같은 색감의 세계가 펼쳐졌겠지. 지금의 어른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런 흑백 사진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나는, 그런 것들이 잘 상상이 안 가. 그러니까, 어떤 흑백 사진을 보면은, 단지 흑백 사진기로 찍었을 뿐인 그 컬러풀한 광경을 잘 떠올릴 수가 없게 된다는 말이야. 어딘가 너무 이상하고 틀린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20세기 초반이나 초중반에 사람들이 지금과 똑같이 생긴 세상을 살아갔을 거라는 당연한 사실이 잘 와닿지가 않는 거야. 그런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 세상에 억지로 색을 입히려고 하면, 오히려 그 색들 때문에 나머지 형상들도 뭐랄까, 작위적이게 되어버려.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 특유의 쨍한 색감으로 세상을 그린 것처럼. 우리가 보는 색깔들은 뭔가 그런 색칠된 색깔보다는 뭔가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그리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다기보다는. 그런데 그것과는 다르다고, 흑백 사진에 상상으로 입힌 색깔은. 그렇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뭔지 알 것 같기도 한데.”하고 나는 말했다.
“그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그러니까, ‘완전히 자연스러운 색깔’이라는 걸 입힐 수가 없는 거야. 예를 들어, 옛날 철학자나 작가들의 흑백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점점 그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조금씩 까먹어가는 거야. 그런 사실을 알고, 최대한 느끼려고 시도해봐도 그럴 수가 없다고.”하고 그녀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런데 그러는 이유가, 우리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컬러풀하고 자연스러운 20세기 초반을. 우리는 그 시절을 볼 수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있을리가 없잖아. 지금처럼 실제랑 가까운 사진이나 영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우리의 인생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는 거지, 그 시절 세상의 정확한 모습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의 삶의 경계 완전히 바깥에 놓여 있으니까, 어떻게 해도 상상할 수가 없는 거야.”
“삶의 경계 완전히 바깥에…”하고 나는 그녀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은, 흑백 사진, 그러니까 사진기 같은 도구들이 지금 우리의 삶의 경계를 조금 혼란스럽게 만든 것 같지 않아? 그런 것들을 접하게 만듦으로써, 실제보다는 훨씬 긴 수십 년의 세월을 우리 삶 속에 섞어놓는 거지. 그리고 또 흑백 사진에서 컬러풀한 광경을 생각하려 할 때의 이질감도, 그런 희미해진 경계에서 어느 정도 나오는 게 아닐까? ‘내 삶’과 ‘그쪽의 삶’이 이렇게 연결되어 버렸다 보니까.”
오후 2시가 지나서 우리는 건물 안에 있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 상영 시간을 착각한 탓에 상영관까지 뛰어가야 하긴 했지만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영화관 안은 검은 천으로 두텁게 둘러싸인 것처럼 어둡고 차가웠다. 2시간 40분이 넘는 긴 범죄 영화였는데 꽤나 재미있었다. 주인공들이 좁고 더러운 공중화장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인물과 사건과 장소를 검소하게 사용하는데도 특색있고 흥미로웠다. 가끔 섬광으로 영화관 전체가 밝아져 객석들의 윤곽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아, 이곳은 영화관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마다 힐끗 본 그녀의 옆모습은 영화에 아주 집중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저녁 식사까지 시간이 조금 남기도 했고, 낮 동안 달궈진 공기가 조금 식었을 것 같아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밖은 여전히 조금 더웠지만, 귀 뒤와 목 주위에 맺힌 땀방울을 주기적으로 말려주는 바람은 시원했다. 건너편 인도 가로수에 붙어있는 나뭇잎은 4차선 도로를 넘어 이쪽 편 인도까지 살랑거리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빠른 속도로 나뭇잎에 가려졌다가 드러나는 햇빛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전하려는 박동처럼 깜빡거렸다. 태양은 노을이 되기 전 중간 단계라도 거치는 듯, 하얗고 선명한 노란빛을 띠었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잘게 조각난 기다란 빛줄기의 햇살이 우리가 있는 곳에 도달해 그녀의 옆얼굴을 더욱 선명하게 그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셔츠는 이제 노란 햇빛과 나뭇잎 그림자로 고스란히 얼룩졌다.
우리는 미리 찾아둔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덮밥 같은 한 그릇의 식사를 파는 소박한 일식집이었다. 식당 내부는 과하지 않고 편안함을 주는 나무 인테리어에, 올드팝의 피아노 편곡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식사에 집중하고 있을 뿐인 차분한 분위기였다. 나는 튀김 덮밥을, 그녀는 연어 덮밥을 시켜 서로와 조금씩 나누어 먹기로 했다.
나는 숟가락을 잠시 내려두고 말을 시작했다.
“근데 있잖아, 너는 ‘내가 미래엔 이런 종류의 사람이 될 것 같다’ 아니면 ‘이런 일을 한 번은 할 거 같다’하는 게 있어?”
그녀는 정사각형의 식탁 구석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아니, 딱히. 나는 ‘미래에 어떻게 될지’ 같은 건 거의 모르겠던데.”하고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구체적인 사건이나 그런 정확한 건 안 떠오르는데, 뭔가 느낌이 오는 건 있어. 뭔가, 아주 중요하고 중심적인, 그리고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가슴 속에 계속해서 품고 있을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하거나 마음을 가지는 일이 한 번쯤은 있을 거 같아. 사실은 거의 확신하는 것 같아. 직장에서 어떤 일을 엄청 잘 해낸다던가, 어린 시절 동경하던 걸 하나 이루어낸다거나, 하는 일들 있잖아. 그중 적어도 하나, 아니면 몇 가지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까? 언젠가는. 계속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런 일들을 내 삶의 경계 안으로 포함시킬 수 있을 거 같아. 완전한 나의 경험으로서 말이지.”
식당에서 나왔을 땐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하늘이 서쪽에서부터 서서히 노란빛으로 물들여지는 것이 보였다. 길을 가다가 왼편으로 돌자 10차선의 큰 길이 나왔다. 서로서로 마주보는 크고 작은 건물들 중앙, 탁 트인 공간에서 커다란 태양이 눈부시게 빛을 냈다. 내리막길 아래에서부터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노을을 품은 하늘은 자신의 드넓음을 더욱 명확히하기라도 하듯이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감탄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쪽 길로 조금만 더 걷다가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녀와 함께 걷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졌다. 가로등은 창백한 청록색 빛을 원뿔 형태로 거리거리마다 드리웠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았고, 길가를 걸어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어 아주 고요했다. 기온 자체는 내려갔으나 바람이 없어서인지 오후나 저녁 때보다 더 더운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하늘색 셔츠 안쪽에 입은 러닝의 등판과 가슴팍에 땀이 조금 묻어나왔다. 혹은 이곳의 분위기 때문에 그 땀을 더욱 크게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걸으면서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마찬가지로 조용해졌다. 그녀가 그 말을 하고 난 뒤로도, 왜인지 나는 조용히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있잖아,”하고 그녀는 말을 시작했다. “우리들은 어딘가 눈사람 같은 면이 있어. 어느날 저녁에 만들어지고, 다음날 아침에 녹아 사라지는. 그렇게 치면 지금 우리는 저녁 노을의 시작에 해당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걸 거야. 눈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광경 속에서, 지금 우리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 거야.
그런데 말이야, 뭔가 무섭고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해. 우선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왜 왔는지 알지 못해.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냥 만들어져 있을 뿐이지. 뒷마당에, 나뭇가지 팔과 단추 눈과 당근 코를 달고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냥 존재하게 된 거지.
그리고 이 노을이 무엇인가의 끝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잖아. 느낄 수 있잖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걸 알잖아. 그 노을이 져버리고나면, 깊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남은 세월들을 그저 버텨내야만 하는 걸까? 수증기로 천천히 승화되면서, 바람에 깎여나가면서, 여기저기 움푹 파인 채로, 일출을 마주할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걸까?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려보니,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녹아내리는 내 몸을 발견하게 되는 걸까?
잘 모르겠어, 그 기나긴 밤이,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떨지. 지금은 너무 많은 것들이 모호하고 흐릿해서. 시간이 흐르면 좀 더 많은 것들이 그 모호한 겉껍질을 벗고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런데 그렇게 믿더라도, 나는 무서워. 가끔은 너무 무서워서 내 몸 속 심지가 굳어버리는 느낌이야. 그때가 되어서야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는 걸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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